김득신은 ‘조선의 독서왕’이다. 그는 글 읽은 횟수를 기록해 둔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백이열전(伯夷列傳)>은 11만 3000번 읽었단다. <백이열전>은 《사기》에 수록된 고죽국 군주의 두 아들, 백이와 숙제의 전기다. 후대의 정약용은 ‘하루에 백 번 읽어도 3년 걸리는데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단 말인가’라며 의문을 표했지만, 좋은 음악 여러 번 듣듯 같은 글을 여러 번 읽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쨌든 김득신에게 <백이열전>은 좋은 음악보다 더한 감동을 주었나 보다. 《사기》에 나오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이야기를, 우리는 한 번만 읽어보자.
중국을 최초로 지배했던 왕조는 3000여 년 전의 상(商)나라다. 여러 제후국이 상나라를 섬겼는데, 그 중에 고죽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고죽국의 왕은 생전에 셋째 아들인 숙제가 왕위를 계승하길 원했지만, 왕이 죽은 후 숙제는 첫째 아들인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한다. 그러자 백이는 아버지의 뜻을 어길 수 없다며 도망가 버린다. 숙제도 형님 대신 동생이 왕이 되는 건 옳지 않다며 도망간다. 그래서 둘째 아들이 왕이 된다.
왕이 될 수도 있었던 이 형제는 거지꼴이 되어 전국을 떠돌다가 또다른 제후국인 주(周)나라에 가서 살기로 결정한다. 주나라 왕 창(昌)은 덕망이 높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나라에 도착해 보니 창왕은 죽었고, 왕위를 물려받은 아들이 상나라를 침략하려고 군사를 일으키는 참이었다. 당시 상나라의 왕은 주지육림으로 유명한 폭군이어서 전쟁의 명분은 있었다.
백이숙제는 출정하는 왕의 말고삐를 잡고 만류했다.
“부친의 장례가 끝나지 않았는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孝)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가 임금을 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옆에 있던 장수들이 백이숙제를 베려 하였으나 군사(君師) 강태공이 제지했다. 그 뒤 주나라가 상나라를 평정해서 중국을 지배하게 된다. 백이숙제는 “폭력으로 폭력을 대신했다”고 주나라를 비판하며 ”앞으로 주나라 땅에서 난 곡식은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연명하다 굶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