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으로 단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고. ‘갓난아이의 주먹만한’ 송이눈이 내리는 겨울밤이야. 장소는, 아주 작은 시골 간이역. 때는 바야흐로 80년대 초중반(조촐하고 소박하고 어리숙한 시대지. 지금과 비교하면 말이야. 뭐 하나 번듯하게 번쩍거리는 것 없는. 그러니 그 간이역이 오죽하겠니?) 연착된 기차는 한참을 지났는데도 오지 않고, 대합실에는 달랑 톱밥 난로 하나가 온기를 만들어내고 있어.
역장은 이들을 보면서 유치창 너머를 무심히 바라봐.
송이눈이다. 갓난아이의 주먹만 한 눈송이들은 어둠 저편에 까맣게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수은등의 불빛 속에 뛰어들어 오면서 뚱그렇게 놀란 표정을 채 지우지 못한 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달랑 한 페이지 넘겼는데, 벌써 이 구절에 줄을 긋게 되더군. 소설은 내내 섬세한 서정성을 잃지 않더라. 아마도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를 모티브 삼아 소설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소설이라 그런 모양이야.
자, 이쯤 되면 이야기의 배경은 그려지지?
그럼 이번에는 이 좁고 추운 대합실에 어떤 사람들(배우들)이 모여 있나 살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