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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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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처벌을 소설화한 <처절한 정원>은 1999년 모리스 파퐁의 실제 재판을 배경으로 한다.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뒤섞인, 이 짧은 소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적 양심을 지켜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왜 역사에 대한 기억의 복원이 중요한지 우리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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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은 60쪽 분량의 짧은 소설. 감수성 넘치는 필체와 담백한 구성으로 단번에 읽히는데, 책을 덮고 나면 한참동안 알싸한 여운이 남는다. 짧은 시간 동안 숱한 주제들이 갑자기 밀려든 탓이다. 흉포한 나치 독일의 무자비한 점령 아래서 삶을 일궈낸 한 가족사를 다룬 <처절한 정원>. 그 속에는 인간과 인간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사랑과 정말로 인간다운 양심이, 그리고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는 역사로부터 도무지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의 삶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과 허구가 독특하게 해후(邂逅)한 <처절한 정원>은 1999년 나치부역 혐의로 프랑스 법정에 선 모리스 파퐁의 재판에서 시작된다. 모리스 파퐁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레지스탕스였다는 경력을 내세워 드골 정권 시절 파리 경찰국장까지 역임한 거물급 정치인이다. 어떻게하다 파퐁은 2차 대전이 종결한 지 50년이 지난 시점에 여든일곱 살의 나이로 재판정에 서게 됐을까. 파퐁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그의 범죄를 낱낱이 증언한 마이클 슬리틴이라는 한 역사학자의 집요한 추적에 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다. 나치의 꼭두각시 정권이었던 비시 정권 하에서 보르도 지역의 치안 부책임자였던 모리스 파퐁은 결국 1590명의 유태인을 체포해 추방한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석방, 은둔생활을 하던 파퐁은 작년 가을(2012년 12월)에 숨을 거뒀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혹여 식상한 느낌이 밀려오지는 않는지. 나치와 나치부역자, 레지스탕스에 대한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은 소설로, 다큐로, 영화로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그러나 미셸 깽은 무겁고 식상해 보이는 주제를 전혀 다르게 재간있게 빚어내 사람들을 감동하게 만든다. 또한 가장 비극적이고 공포스러운 장면을 희극적이고 조소가 가득한 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이런 종류의 소설이 빠지기 쉬운 감상주의를 비껴가고 있다. 

우리에게 이 소설은 더 뼈저릴 수도 있다. 우리들 자신이 풀어내야 할 수많은 ‘과거사’들을 판도라의 상자 안에 처박아둔 채 상자만 꼭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꼼꼼히 읽으면서 과거사를 다루는 프랑스사회의 방식과 한국사회의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그런 다음 찬반 대립 때문에 일보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이 청산해야 할 과거사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과거사 청산’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자신의 입장을 세울 기회로 삼으면 좋을 듯하다. 

나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어릿광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