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읽기 |
1938년 1월, 채만식은 <조광>지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어. 서울에 사는 대지주이자 고리대금업자 윤두섭과 후손들에 관한 이야기야. 채만식이 연재를 할 당시에 일제는 내선일체[1]를 부르짖으며 한글말살정책을 펴는 등 우리 문화를 극심하게 억눌렀어. 작가들은 일제의 서슬에 붓조차 들기 어려웠고. 조선의 현실을 소설로 쓰는 것 자체가 일제에 반항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어.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식민지 모순을 드러내는 작품을 발표하기 어려웠을 거야.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었으니까. 대지주 윤씨 일가 얘기로 채만식은 어떻게 식민지 현실을 꼬집었을까? 
바로 전통적인 판소리 사설을 눈여겨본 거야. 그래서 이 작품은 문체가 아주 독특해. 물론 그 밑바탕에는 식민지 모순을 꿰뚫어보는 작가의 비판적 통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저 계동의 이름난 부자 윤직원 영감이 마침 어디 출입을 했다가 방금 인력거를 처억 잡숫고 돌아와 마악 댁의 대문 앞에서 내리는 참입니다.”
판소리 ‘놀부가’에서 구수한 입담으로 놀부의 등장을 묘사하듯 했지? 1월에 시작한 연재는 9월까지 계속되었고, 이 얘기 ‘천하태평춘’을 《태평천하》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단행본으로 출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