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포장을 들추고 들어섰다. 그 선술집에서“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우리 세 사람이라면 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안(安)이라는 대학원생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요컨대 가난뱅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그의 정체를 꼭 알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를 말한다.”
‘나’와 ‘안’은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그 대화는 허황하다. “안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아니오. 아직까지는. 김형(‘나’)은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예. 날 수 있으니까요.”… 두 사람의 대화는, 어떻게 보면 감상적이어도 보이고, 허무맹랑해 보인다. 그런데 이 대화들이 거의 소설의 중반까지 계속된다. 둘은 말은 나누지만 진심은 나누지 않는다. 두 청년은 이제 자리를 옮기려 한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사내’가 동행하길 간청한다.
세 사람은 사내의 권유에 다시 중국요릿집에 들어선다. ‘사내’는 오늘 아내가 급성뇌막염으로 병원에서 죽었다고 했다. 친정 왕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가난뱅이 서적 외판원인 사내는 장례를 치를 방법이 없어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고 4,000원을 받아왔다. 이 무기력한 사내는 이들 청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통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는 자기 세계에 빠져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안’ 역시 타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개인주의자였다. 거리를 방황하던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여관에 든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자고 했고, ‘나’는 사내가 염려스러워 그러자고 하지만, 안은 거절한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다음날 아침, 사내는 숨을 거뒀다. 자살을 한 것이다. 나와 안은 서둘러 여관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