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목민’, 몇 해 전 노트북 광고에도 등장했던 말입니다. ‘유목민’은 영어로 ‘노마드(nomad)’인데요. 요즘 노마드, 노마디즘(유목주의) 등의 말이 광고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에서 흔히 쓰이게 되었어요. 유목이란 과거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등지의 지배적인 삶의 형태로, 가축 무리와 함께 목초지대를 찾아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생활 형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왜 난데없이 ‘노마드, 노마디즘’이 거론되는 걸까요?
그간 유목민에 대한 거의 모든 기록들은 편견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유목민에 대한 정착 문명권의 오만과 멸시는 20세기가 저물 때까지 지속되었다. ‘문명’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유목’을 ‘야만’의 자리에 배치해 놓기 위해 출현한 것이었다. 어쩌면 유목제국이 몰락한 후에도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칭기즈칸 콤플렉스가 중세 이후 역사의 한 동력이었는지 모른다. 서양사는 특히 그랬다. (……)
그러나 도대체 이를 어찌해야 좋은가? 그렇게 달아나고 달아난 끝에 인류는 다시 첨단 문명의 표상으로 유목민을 거론한다. 특히 서구 문명이 21세기를 ‘유목적인 것’으로 천착하는 데 앞장선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부유한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여행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동해야 하므로 결국은 누구나 유목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20세기까지 ‘유목’은 낡고 야만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어요. 정착 문명이 가져온 안정과 번영을 중시했고, 이러한 문명이 더 우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면서 유목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발전 중입니다. 인류가 새로운 유목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IT 기술 발달 덕입니다. 우선 인류는 과거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손쉽게 세계 곳곳을 넘나들 수 있게 됐어요. 비행기나 배, 철도 등 다양한 교통수단의 발달로 새로운 세계로 여행하는 것이 일상화됐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와 교류할 수 있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