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발길이 닿는 곳 어디서나 고대 파라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답게 불가사의하고 신기한 유적들이 많은데, 모두 놀랍도록 발달한 문명과 파라오의 절대 권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나 고왕국 시대기원전 2635년~기원전 2140년에 세워진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와 신왕국 시대기원전 1539년~기원전 332년에 세워진 아부심벨 신전이 대표적이다. 사막의 메마른 모래바람 속에서 위용을 드러내는 쿠푸 왕의 거대한 피라미드도 그렇지만, 나일 강의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아부심벨 신전은 이집트 영광의 흔적과도 같아 절로 숙연해진다.
나일 강의 범람으로 인한 풍요와 사막이라는 지리적 조건 속에서, 이집트는 오랜 세월 강대한 제국으로 남을 수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연중행사처럼 정확한 주기로 일어나는 나일 강의 신비한 범람은 이집트의 메마른 땅에 곡창지대인 검은 땅 케메트를 남겨주었고, 기원전 5000년 전 그 위에 이집트 문명이 탄생했다. 이곳은 외부의 침입이 어려운 열사의 사막이었기에 긴 시간 동안 파라오가 지배할 수 있었다. 상형문자, 파피루스, 태양력, 측량술, 역학적 지식, 의학 등이 눈부시게 발달했는데, 당시 한반도는 아직 신석기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집트 문명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파라오의 영광이 가장 드높았던 시기는 람세스 2세 때였다. 그는 기원전 1279년부터 기원전 1213년의 60여 년 동안 파라오의 위치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스스로를 태양왕의 후예(람세스는 태양신 ‘라’와 태어나다는 ‘모세’가 합쳐진 이름이다)라고 칭했을 만큼, 그리고 후대에도 그렇게 불릴 만큼 이집트의 풍요와 번영을 누린 파라오임에 틀림이 없다.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의 정치·종교적 최고 통치자다. 강력한 왕권으로 이집트를 이끌었던 파라오 왕조는 기원전 30년에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되기까지 약 3500년에 걸쳐 지속됐다. 때문에 파라오의 역사는 곧 이집트의 역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