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이에게 산책은 화장실에 갈 유일한 기회다. 세상에 응가 못 싸고 살 수 있는 생물 없듯이 산책은 천둥이 견생에 있어 매일의 아주 중요한 의식과도 같다. 여기까진 당신과 나의 눈높이가 맞춰졌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내 친구들은 여전히 불만을 토로한다. 그럼 배변만 규칙적으로 잘 시키고 들어오면 되지, 도대체 왜 전화만 하면 ‘산책 중’이냐고! 도대체 천둥인 하루에 산책을 몇 시간이나 해야 할까?
어… 농담을 조금 보태 나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22시간, 혹은 그 이하라고 하면 이해가 쉽겠다. 적어도 두 시간 산책은 디폴트니까 말이다. 이 정도로 오래 산책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는 운동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드넓은 잔디밭에 풀어놓으면 마치 경마장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경주마처럼 바람을 가르며 내달리는 게 1~3세의 대형견이다. 사람 나이로 12~26세. 그야말로 한창때니 왜 안 그렇겠는가. 물론 소형견에게도 산책과 운동은 중요하다. 하지만 대형견과 비할 바는 아니다. 집 안에서 종종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꽤 운동을 대신할 수 있는 소형견과 달리, 대형견은 ‘매일’ ‘무조건’ 나가야 한다. 활화산처럼 끓어넘치는 에너지를 소진시켜 주지 않으면? 집안 모든 것을 물어뜯고 찢어버리는 ‘문제견’ 등장이오!
그래서 견주들은 남들과 조금 다른 세상을 산다. 우리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어가면 축구장 두 개 넓이의 너른 잔디밭이 나온다. 가로등이 있긴 하지만 워낙 넓은 잔디밭 중앙은 몹시 어두워 100m 앞을 분간하기도 어렵다. 별일 없다면 다들 드라마를 보거나 이불 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밤 9~10시, 그곳에 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약속하지도 않았지만 어둠을 틈타 하나둘씩 쌍쌍이 모이는데, 하나는 네 발로 걷고 다른 하나는 두 발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