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의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화장실 가는 게 아주 고역스러웠다. 일명 푸세식(오물을 퍼서 처리한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화장실은 악취가 났고, 벌레도 너무 많이 꼬였다. 사람들의 거주 공간 밖에 있는데, 밤이면 자칫 발을 헛디뎌 똥통으로 빠지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청결하고 화사하며 안전하고 기분 좋은, 도시의 화장실과는 천양지차였다.
우리가 지금 쓰는 수세식 변기가 널리 보급된 것은 아주 오래 전이 아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재래식 변기와 요강을 쓰는 경우가 흔했다. 그리고 100년 전, 서울 종로 거리는 아무렇게나 버린 각종 인분과 오물이 뒤덮여 있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유럽의 황족과 귀족들도 전용 요강을 가지고 다니며 볼일을 봤고, 2층 이상의 건물에 사는 시민들은 창문 밖으로 분뇨를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분뇨와 오물투성이 거리는 각종 전염병의 온상이었다!
18세기에는 오늘날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똥 냄새가, 뒷마당에는 오줌 냄새가, 건물 계단에는 썩어가는 나무와 쥐똥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침실에는 땀에 젖은 시트와 눅눅해진 이불 냄새와 함께 요강에서 나는 지린내가 배어 있었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중
이 끔찍한 환경을 개선한 것은 수세식 변기의 출현이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 중인 현대식 변기는 아니었지만, 기원전 26세기경 인더스 문명권의 도시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기원전 18세기경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서도 수세식 변기가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는 발달한 수도 시설을 활용해 변기 밑으로 물이 흐르도록 한 것으로, 수세식 변기의 발명이라기보다는 배수시설의 발달에 힘입은 작은 변화 정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