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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니클>,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다면?

지난 봄 몰려온 영웅 군단에서부터 올 여름을 시원하게 강타한 거미인간과 박쥐인간까지, 마블과 DC 코믹스의 초능력자들이 관객들을 극장가로 끌어 모으고 있다. 그들의 틈바구니 사이에 영웅이 될 수 없었던 꽤나 현실적인 초능력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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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쓰고 쫄쫄이 수트를 입은 히어로들. 이들은 단순하기만 했던 지난날의 초인들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고뇌하고, 영웅의 운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쓰며,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떠돈다. 그럼에도 결국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싸워 마침내 악의 무리를 물리친다. 영화는 결국 행복한 사기극이다. 만약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면, 한 개인이 이 모든 것을 짊어졌다간 필시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을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미쳐버릴 테니까. 

<크로니클>은 누구나 한 번쯤 했음직한 물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나에게 슈퍼맨과 같은 초능력이 생긴다면? 장난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 영화는 불가사의한 엄청난 힘을 갖게 된 평범한 세 명의 고등학생들을 찬찬히 따라간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을 실험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야말로 선과 악의 경계선에 있는 불완전한 개체들이면서 한편으로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가장 충실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거대한 힘을 가진 인간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실험 카메라이기도 하고, 약자를 위한 사회 고발적 메시지이기도 하며,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십대 소년들의 감성에 대한 크로니클(chronicle; 연대기)이기도 하다

렌즈 뒤에 숨은 약자의 시선

영화의 시점은 주인공 앤드류에게서, 정확히는 앤드류의 카메라 렌즈 너머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발견된 화면이라는 뜻의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는 기법으로, <블레어 위치> <클로버필드> <디스트릭스 9> 등의 페이크 다큐 영화에서 쓰이면서 유명해졌다. 마치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이 기법은, ‘만약 내게 초능력이 생긴다면?’이란 질문을 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영화적 장치다. 영화 초반 고작 10분 남짓한 사이, 앤드류는 아버지와 학교 동급생, 심지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뚜렷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매를 맞는다. 인간 사회의 먹이 피라미드 속 앤드류의 위치는 가장 밑바닥이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이고, 어머니는 병에 걸렸지만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다. 왕따에 불우한 가정환경까지, 진정한 사회적 약자인 앤드류는 어찌 보면 히어로물의 영웅이 될 조건을 완벽히 갖췄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