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능동적이면서 수동적이다. 우리의 의지로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지만, 그 기억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의지와는 상관없이 평생 머릿속에 남는 기억도 있다. <애플>은 이렇게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속되는 기억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주인공 알리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애플>의 세계에서는 코로나19는 없지만 기억상실증이 유행하고 있다. 정확한 발병 원인도, 다시 기억을 되돌리는 방법도 불명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직장에 갔다가, 파티에 놀러 갔다가, 그냥 집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알리스는 꽃을 사든 채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중이었다. 버스 기사가 종점에 도착했다며 알리스를 깨우지만 알리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행선지가 어디였는지조차 모두 잊어버렸다. 자신의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은 하나도 소지하지 않은 채였다.
의사의 진단 결과 그는 자신에 대한 기억은 물론이고, 상식도 잊어버렸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사과의 맛뿐.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기억이다. 그런 무연고 기억상실증 환자가 병원을 나가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가족이 자신을 찾아주거나,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통해 살아가는 법을 다시 익히며 새 삶을 시작하는 것. 자신을 찾는 가족이 없었던 알리스는 결국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된다.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에 들어간 이들은 혼자 살 수 있는 집을 지급받는다. 그리고 병원에서 제시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자전거 타기, 할로윈 파티 가보기처럼 비교적 수행하기 쉬운 것부터 자동차 운전하기, 새로운 사람 사귀기까지 미션의 난도는 점점 높아진다. 알리스는 착실하게 병원의 미션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