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오랜 시간 이야기해왔다. 누군가는 인간이란 자연에 대항해, 선택을 통해 자신을 초월해 가는 존재라고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인간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거대한 담론을 대할 때마다 어딘가 쓸쓸한 기분이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고통받고 기뻐한다.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그래서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처럼, 결코 보편화할 수 없는 것을 보편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거장 켄 로치가 감독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시민의 이야기이다. 내가 만난 다니엘 블레이크의 첫인상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소 무심한 말투를 쓰는, 옆집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노년의 남성. 영화가 끝난 뒤의 생각은 달랐다. 생을 위한 가혹한 투쟁 속에서도 온기를 잃지 않은 그는,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스크린에서 만났던 최고의 영웅이었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늙은 목수다. 일하다 심장에 무리가 와서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그에게 심장이 나아질 때까지 당분간 일을 쉬라고 권고한다. 휴직하는 동안 질병 수당을 받기 위해 사회보장센터를 찾지만 절차는 복잡하기만 하다. 증명해야 할 것도 너무 많고, 온라인에서 서식을 작성하지 않으면 신청을 할 수조차 없다. 컴퓨터는 생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심사 기간은 몇 주씩 걸리고 담당자는 전화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다니엘은 사회보장센터에서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있는 한 여자(케이티)가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보조금 심사 상담조차 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목격한다. 케이티는 버스를 놓쳐서 그랬다고 설명해 보지만 직원들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보다 못한 다니엘은 런던에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기세조차 낼 형편이 안 되는 그녀를 위해 집을 보수하는 걸 돕고 전기세를 담은 봉투를 놓고 간다. 이 일을 시작으로 케이티와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된다. 좋은 이웃. 삶이 어려운 그들에게 다니엘은 따뜻한 말과 선물을 건넨다. 그가 가져오는 온기에 말이 없던 케이티의 어린 아들 딜런의 표정은 밝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