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뇌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통로로 들어가면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가 느끼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단, 그곳에서는 15분간만 머물 수 있다. 15분이 지나면 어느 순간 고속도로 톨게이트 옆 어딘가로 떨어진다. 머물 수 있는 시간이 15분에 지나지 않지만, 여러분은 그 통로에 대해 매우 흥미롭게 느낄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유명한 연예인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는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타인의 몸에 들어가는 독특한 행위’를 그린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다른 사람이 되어봤으면 하는 상상을 한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존 말코비치 되기>는 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는 영화다. 영화의 상당 부분은 말코비치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크레이그나 로테의 시선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크레이그는 가난한 인형술사이고 로테는 그의 아내이다. 영화를 보는 이의 시선과 말코비치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크레이그나 로테의 시선이 겹친다.
그렇지만 타인이 말코비치의 몸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감각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인형술사인 크레이그는 자신의 기술을 한껏 발휘해 점차 말코비치의 몸을 통제하는 법을 터득한다. 크레이그는 마침내 15분이라는 시간의 한계도 뛰어넘고 말코비치를 완전히 장악한다. 말코비치의 의식은 어딘가로 밀어내고 크레이그 스스로 말코비치가 되어 몸을 움직이고 말하게 된다. 이 존재는 도대체 크레이그인가, 말코비치인가?
무능한 인형술사였던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몸에 들어가기 전에도 타자가 되는 경험을 줄곧 해왔다. 꼭두각시 인형을 통해서다. 크레이그는 인형을 줄에 연결하여 조정함으로써 자신의 의식과 타자의 몸을 완전하게 일치시키는 경험을 해왔다. 꼭두각시를 줄로 연결하여 조정할 때 크레이그의 의식은 인형의 몸에 들어가 인형이 보는 것처럼 사물을 보고, 인형이 느끼는 것처럼 느끼고, 인형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크레이그의 인형 중 남자 인형은 크레이그를 닮았고 여자 인형은 크레이그가 흠뻑 빠져 있는 회사 동료 맥신을 닮았는데, 두 인형을 움직여 입맞추는 장면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대리만족하려는 행위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