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위저드 베이커리> <완득이> 등의 성장소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보통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유년기나 청소년기의 개인이 자아와 세계와의 대결의 결과로 보상받는 정서적인 진보를 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개인들의 성장이 일방적인 성취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도 허다하다. 보통의 성장이란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하니까. 단번에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건 소설 속에서나 있는 얘기다.
뻔한 성장과 발전만을 강조한 기존의 성장소설에 반대하며 등장한 것이 ‘반(反)성장소설’이다. 반성장소설이란 뚜렷한 장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세계에 대한 순응과 화해를 통해 새로운 인물을 편입시키는 것이 성장소설이라면, 주인공이 기존 세계에 수용되지 못하는 경우를 반성장소설이라 한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는 비교적 유쾌한 반성장소설이다. 주인공 태만생은 태평양보다 파도가 거센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고등학생이다. 부모의 미국행으로부터 시작되는, 그가 겪는 평범치 않은 사건들은 최근 성장소설들의 불행한 주인공들과 ‘맞짱’을 뜬다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수위가 높다. 물론 만생이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순진한 녀석은 아니다. 그렇다고 <완득이>의 완득처럼 강인한 의지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만생은 나쁜 아이도 착한 아이도 아닌 애매한, 딱히 정의내릴 수 없는 청소년이다. 정말 ‘오, 애매리카!’다.
애매한 청소년. 그들이 바로 대다수의 청소년이지 않을까. 부모님과 적잖이 싸우기도 하고, 눈에 띌 만큼의 문제아는 아니며, 성적도 고만고만, 별나게 잘하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 하지만 모든 이들은 성장통을 겪는 동안, 많이 아프다. 조그마한 일에도 마음에 깊은 생채기가 나 오래 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극복해내고 어른이 되어가겠지만. 그런데 태만생은? 꽤 지독한 성장통을 이겨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소개
황현진
2011년 장편소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로 제16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두 번 사는 사람들』, 『호재』, 중편소설 『달의 의지』, 단편소설 『부산이후부터』, 소설집 『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