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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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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

얼음처럼 냉혹한 숙명적 사랑을 읊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가 인종의 긴 세월을 보내는 동안, 조반니는 그들의 그런 자제력이 오히려 자신에 대한 복수의 고문처럼 느껴졌다. 그 반대의 경우는 숙명적인 죽음이었다. 그 죽음은 시인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제5곡에 기술된 ‘카이나적’인 죽음이었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비극적인 사랑이, 레오폴도 루고네스라는 낯선 아르헨티나 작가의 손을 거쳐 시의 운율을 타고 우리 가슴에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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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문학의 전 과정을 단 한 사람으로 축소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레오폴도 루고네스가 될 것이다.”

첫 디바이더(중간표지)에 박힌 문장에 시선이 멈춘다. 보르헤스가 이름도 낯선 레오폴도 루고네스를 두고 한 말이다. ‘작가들의 작가’ 보르헤스는 특히 아꼈던 세계문학 작품들을 모아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로 엮었는데, 루고네스의 작품집 <소금기둥>은 그중 하나다. 장중하리만치 진지한 보르헤스의 칭찬은 오히려 책읽기의 기세를 누그러뜨린다. 남미 문학에 겁을 먹고 있는 탓이다. 

어쩌면 보르헤스의 칭찬이 대단한 과장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친다. …아니다, 혹여 보르헤스의 찬사가 진실이라고 달라지진 않는다. 루고네스 작품에 대한 전체 평을 담은 서문 격의 글은 ‘시의 운율을 닮은 환상’이란 제목을 달았다. 남미 문학 특유의 환상에다 시의 운율까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독자로서 조금 망설여진다. 그 망설임을 호기심이 밀어낸다. 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보르헤스로부터 그런 찬사를 받은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뒤적이다 우연히 펼쳐든 작품이 <프란체스카>.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건은 1283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실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첫 장의 각주는 단박에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꼽추며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인 줄 모르고 한 결혼, 마음씨 다정한 시동생과의 불륜, 그리고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