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이란 제목은 서정성을 듬뿍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뭔가 그럴 듯한 이야기가 가득 하리란 기대감을 준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잘 만든 ‘소녀만화’(하이틴 로멘스물)와 꽤 닮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씩씩한’ 소녀 시즈쿠와 바이올린 만드는 장인을 꿈꾸는 소년의 풋풋한 사랑 얘기가 기둥을 이루는.
그러나 다행하게도 ‘소녀만화’처럼 ‘트렌디’하거나 공상적인 작품이 아닌, 평범한 듯하면서도 특색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다른 작품들과도 좀 구별되는, 색다른 애니로 태어날 수 있었던 원천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실감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담고 있다는 것. ‘소녀만화’의 경우 리얼리티보다는 막연한 동경 혹은 환상에 이끌리는데, <귀를 기울이면>의 경우 그냥 사는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다. 특히 시즈쿠 가족은 평범한 일본 가정을 그대로 ‘복사’한 것처럼 사실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천을 꼽으라면, ‘소녀만화’가 전형적인 남녀 간의 사랑 얘기에 국한해 있는 반면에, 이 작품은 보다 넓은 세계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의 싹이 돋아남과 동시에 소녀와 소년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스스로 성장해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사랑과 꿈이 현실적인 진로에 잇닿아 있다.
이 작품의 원작만화가 히라기는 <별의 눈동자 실루엣>이라는 전형적인 소녀만화를 그리면서 다음 작품에서는 절대로 사랑 얘기만으로 종결짓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귀를 기울이면>은 그의 두 번째 연재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