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귀신이 참 무서웠다. 홍콩 할매 귀신 이야기를 듣곤 손톱, 발톱을 꽁꽁 숨기고 나서야 잠들었고, 머리는 절대 고개 숙여 감지 않았다. 밤 12시가 되기 전에 얼른 잠자리에 드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귀신을 향한 관심은 식지 않아, 나는 괴담을 즐겨 듣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플랫폼이 다양해진 최근에는 예능,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괴담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웹툰으로 보길 제일 좋아한다. 작가마다 다른 작화와 참신한 스토리를 통해 귀신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최근 가장 애정하는 웹툰 〈귀곡의 문〉을 소개한다.
작품은 귀신소굴로 유명한 삼도천동의 ‘귀곡빌라’ 세입자들과 귀신을 퇴치하는 ‘영매사 연맹(영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렇게 간단한 설명만 들으면 귀신 때문에 고통받는 세입자들을 영연이 돕는, 뻔한 내용이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개그’라는 장르를 덧붙여 다소 어두울 수 있는 작품을 재미있고 유쾌한 분위기로 이끈다.
기존 작품과의 차별점은 또 있다. 보통 오컬트 장르물은 악귀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물리쳐야 하는 악귀가 등장하고, 악귀에게 피해 입은 사람과 이를 퇴치하는 영매가 나오는 식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람에 초점을 맞추니 그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장소, 상황, 이야기에 따라 등장하는 귀신들의 종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평범한 악귀는 기본이고 불가사리, 서낭신, 장승 등 신묘한 존재들도 등장하여 작품을 풍부하게 만든다. 또한 ‘개그’라는 장르가 섞여 귀신이 절대악이 아니라 꽤 친근한 존재로 그려진다. 귀곡빌라 세입자들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귀신을 ‘바퀴벌레’나 ‘나방’처럼 해충으로 낮잡아 부르기도 한다. 공포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조금 더 마음 편히 웹툰을 볼 수 있는 이유다.
귀곡빌라 세입자들은 왜 귀신이 나오는 집에서 계속 살까? 알고 보면 우습게도, 집값이 싸기 때문이다. 귀곡빌라 세입자들은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귀신이 등장하면 여타 오컬트 작품 주인공처럼 용감하게 맞서지 않고 외면하거나 퇴마 전문가 집단인 영연에 뒤처리를 떠넘긴다. 또 매일같이 보는 귀신들에 어찌나 잘 적응했는지, 피치 못할 상황에서는 영매사들도 떠올리지 못할 참신한 해결법으로 퇴치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