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중심엔 <플레전트빌>이란 시트콤이 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인기 프로그램은 많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른 저녁,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여보 나 왔어!”하고 외치면 앞치마를 한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와 반갑게 맞이한다. 정성이 가득한 음식들로 채워진 저녁 식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풍경. 과거의 언젠가에는 아주 평범했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기에 그리 소중하지 않았던, 그런 풍경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송이 장수 프로그램으로 사랑받지 않았나. <전원일기>말이다. 그 드라마 안에선 여전히 젊고 성실한 아들들이 엄격하고 현명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현실의 ‘전원’은 그렇지 않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향하여, 이제 시골에는 매우 나이든 총각들과 노인들이 외로워할 뿐이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시골을 떠나온 도시인들은 <전원일기>를 보면서 아련한 기억에 잠긴다. 자신들이 싫거나 지겨워서 두고 온 과거에 애틋한 마음을 두고 싶어 한다. 우리는 TV 안에서까지 죄책감을 느끼거나, 머리가 복잡해지는 게 싫다.
<플레전트빌의 줄거리>
데이빗은 TV 시트콤 <플레전트빌>의 애청자. 어느 날, 여동생 제니퍼와 다투다 리모콘이 박살난 순간, 갑자기 나타난 수리공 할아버지가 새 리모콘을 준다. 그것을 작동시키던 데이빗과 제니퍼는 TV속 흑백세상 <플레전트빌>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순식간에 과거 배경의 시트콤 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된 그들. 자신들의 피부까지도 흑백으로 변해버린 기가 박힌 사실이 이들을 더욱 당혹스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데이빗은 순진하다 못해 바보 같은 이곳 사람들에게 조금씩 실망을 느끼고, 스캔들 메이커인 제니퍼는 질서정연하고 조용한 이 흑백 세상에 변화를 일으킨다. 기계처럼 반복되던 이곳의 질서가 깨지고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감정들을 깨닫는 순간 사랑, 미움, 분노, 그리고 자유가 그 본연의 빛깔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히 받아들이고 칼라로 변한 사람들과 기존의 질서만을 고집하는 흑백 사람들 간의 첨예한 대립이 발생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플레전트빌>에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데이빗이 <플레전트빌>의 열혈 시청자인 이유는, 이 시트콤이 그의 현실과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다. 이혼한 부모님은 헤어진 후에도 서로 으르렁대고, 하나뿐인 쌍둥이 동생과는 서로 관심이 없다. 집에 와도 휘황한 저녁 식탁은커녕, 차가운 냉동식품을 데워 홀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일상. 데이빗은 <플레전트빌>에 나오는 이상적인 가정을 꿈꾸고 있다. 이것이 십대 소년이 50년대의 고루해 보이는 흑백 시트콤에 빠져드는 이유다.
그는 시트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각 에피소드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어떤 퀴즈를 내도 척척 맞춘다. ‘오타쿠’처럼 말이다.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어도,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학교에서 그는 괴짜에다 소심한 남자아이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