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일본을 넘어 한국의 애니메이션 마니아에게도 충격을 안겨준 직후, 아는 후배가 안노 히데아키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제작사 가이낙스가 오타쿠 집단이고 안노 히데아키는 오타쿠의 전형이란 평이 자자했던 지라, 인터뷰가 별 탈 없이 끝날지 의심스러웠다.
무사히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후배의 후일담은 미묘했다. 반바지에 샌들 차림의 그는 소파에 앉은 채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어떤 질문을 던져도 심드렁하고 무성의하게 답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오타쿠인가 보다’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몇 년 후, 그 후배는 다시 안노 히데아키를 만났다. 그런데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바뀌었다. 푸짐한 살이 빠진 것은 기본이고, 단정한 옷차림에 여유 있는 표정과 미소, 그리고 친절하고도 상세한 설명까지, 너무나도 성실한 자세로 인터뷰에 임했다는 것이다.
추정해본 이유는 하나, 안노 히데아키의 결혼이었다. 안노 히데아키는 <해피 마니아> <제리 빈즈> <러브 마스터 X> <워킹맨> <사쿠란> 등을 그린 만화가 안노 모요코와 결혼을 했고, 외모와 생활방식까지 바뀌었다는 말이 퍼졌다. 도대체 무엇이 오타쿠의 표본인 그 남자를 바꿔놓은 것일까? 만화가와 감독이 함께 살면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