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틀에 죽은 작은 거미를 한 달째 방치하고 있다. 처음 거미를 발견했을 땐 흠칫했지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고 관심이 사라졌다. 그것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여부만이 중요하다는 듯, 생각날 때마다 창틀의 먼지를 닦으면서도 거미가 있는 곳은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잊고 있던 거미의 존재를 떠올린 것은 최근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휘파람 부는 사람》을 다시 읽었기 때문이다. 시인이 쓴 여러 산문과 시를 묶은 이 책에는 한 거미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이야기는 시인이 세 들어 살던 집의 계단 구석에서 거미줄을 발견한 것에서 출발하는데, 이 글 하나만 읽어도 시인이 얼마나 세밀하게 작은 생명들을 관찰하는지 느낄 수 있다.
암거미는 알주머니가 완성된 후에도 법석을 떤다. 알주머니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그 위를 돌기도 한다. 마치 심사라도 하는 듯하다. 그다음엔 좀 더 어루만지거나 졸고 있다. 졸면서도 알주머니를 만지고 있다.
메리 올리버는 약 한 달 반 동안이나 거미 가족을 관찰했다. 거미가 조는 모습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거미가 알주머니를 만지는 모습은 거미를 유심히 관찰해야 포착할 수 있으리라. 여기까지만 해도 나라면 시도하지 않을 일 같은데, 어느 날 사건이 벌어진다. 새벽 5시, 귀뚜라미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린 순간. 시인은 굶주려 반쪽이 된 암거미가 귀뚜라미를 약 한 시간 반 동안 사냥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묘사한다. 어찌나 자세히 묘사하는지 마치 세밀화나 영상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인데, 거미가 거미줄에 갇힌 사냥감을 뒷다리로 스무 번가량 차서 기절시켜 잡아먹는 대목은 언제 읽어도 신기하다. 시인은 이사를 앞두고 이 계단만은 청소하지 말라고 청소업체에 신신당부하기까지 한다.
이렇듯 작은 생명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 메리 올리버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얼마나 무심하게 앞만 보면서 길을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사는지. 그러다가 평소라면 생각하지 않을 질문도 하나 생긴다. 내 방 창틀의 거미는 어쩌다가 그곳에 와서 죽은 걸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