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한국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해외 소설 작가는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100만 부 넘게 팔렸고, 베스트셀러 《용의자 X의 헌신》과 《방황하는 칼날》 등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서도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다음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더 잘 나가는’ 이유는 작품의 종수가 훨씬 많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중성을 갖춘 덕이 크다. 문학성은 무라카미 하루키 쪽이 뛰어나다고 분명 말할 수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대중 소설을 쓴다. 게다가 히가시노의 작품 세계는 트릭을 중시하는 정통 미스터리, 첨단 기술과 과학을 활용한 미스터리, 범죄를 통해 사회 문제를 탐구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따뜻하고 인간적인 판타지까지 무척 다양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위 ‘정통 소설’이 아니라 범죄소설, 추리소설 등 대중 소설을 주로 쓴 작가다. 1985년 《방과후》로 데뷔한 이래 히가시노는 100여 권의 책을 출간해 왔다. 전 세계에서 1300만 부가 넘게 팔린 《나미야 잡화점의 기억》처럼 감동적인 판타지나 일상물도 있지만 그의 소설 대부분은 범죄를 다루는 이야기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 《방황하는 칼날》은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히가시노는 사회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문학성보다는 범죄를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과 사회적인 논쟁, 범죄의 트릭이나 수수께끼 등을 자신만의 언어로 펼쳐보인다.
2021년 4월에 나온 《백조와 박쥐》 역시 범죄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55세의 변호사 시라이시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시라이시가 원한을 살만한 이유를 전혀 찾아내지 못한다. 시라이시 변호사는 언제나 다정하고 사려 깊으며, 억울하거나 형편이 곤란한 사람들을 성심성의껏 도왔던 양심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시라이시의 최근 행적을 조사하던 경찰이 의외의 용의자를 발견한다. 접점은 거의 없었지만 동선이 겹쳤던 66세의 쿠라키. 더욱 놀라운 것은 별다른 증거를 대기도 전에 쿠라키가 자신이 시라이시를 죽였다며 자백한 것이다. 살인 동기는 몹시 의외였다. 33년 전의 미제 사건 ‘금융업자 살인사건’의 진범이 자신이고, 사실을 알게 된 시라이시 변호사가 자수를 하라며 강요하기에 살해했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사건에 의문 가는 점이 없었다. 그 정도 이유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일까, 의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아무것도 아닌 동기로 범죄를 일으킨다. 사소한 질투나 분노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매우 많다. 하지만 시라이시의 딸인 미레이와 쿠라키의 아들인 가즈마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미레이가 아는 아버지는 타인의 선택이나 행동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고, 상대의 입장과 처지를 심사숙고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변호사였다. 가즈마가 아는 아버지는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거나 해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에게 양보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미레이도, 가즈마도 사건의 진상이 따로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단서를 되짚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