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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 스팍스> , 허구의 이야기로 현실 속 관계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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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테이아는 피그말리온과 행복했을까?

키프로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상형을 본떠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진다. 그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제물을 바치며 갈라테이아를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는 소원을 빌었고, 아프로디테는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 후 피그말리온과 인간이 된 갈라테이아는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 이야기다. 그런데 피그말리온과 함께하는 갈라테이아의 삶이 행복했을까? 영화 <루비 스팍스>는 켈빈과 루비의 이야기를 통해 이 같은 질문에 답한다. 작가인 켈빈은 어린 나이에 쓴 데뷔작이 큰 성공을 거두며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천재라는 압박에 시달린 탓에 슬럼프를 겪는 인물이다. 차기작을 준비하던 켈빈은 어느 날 꿈속에서 너무나도 매력적인 여성 루비를 만난다. 발랄하고 즉흥적이며 사랑스러운 루비는 켈빈의 완벽한 이상형이다. 켈빈은 그런 루비에게서 영감을 얻어 루비와 자신의 상상 속 연애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켈빈 앞에 루비가 사람이 되어 나타난다. 피그말리온에게 갈라테이아가 나타났듯.

함께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며 켈빈과 루비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쾌활한 성격의 루비는 타인과의 교류를 막고 자신에게만 의존하는 켈빈에 불만을 느낀다. 자의식을 가진 루비와 켈빈은 의견 충돌을 겪는다. 켈빈은 그런 루비를 자기 뜻대로 바꾸기 위해 소설의 내용을 고쳐 루비가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그리고 항상 기쁨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루비는 온종일 켈빈과 딱 붙어 있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켈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루비가 부담스럽고 싫증이 난다.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관계는 의지하는 쪽도, 의지 받는 쪽도 괴로울 뿐이었다. 결국 켈빈은 다시 한 번 소설에 손을 댄다. 

“루비가 집을 나가는 순간 모든 과거가 사라졌고 그녀는 더 이상 캘빈의 창조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됐다.” 켈빈은 소설 속 이러한 대목을 루비에게 알려주며 처음으로 루비의 자율적인 선택을 존중한다. 루비를 떠나보내고 조금은 자유로워진 켈빈은 어색했던 가족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종종 외출도 하게 됐다. 루비와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완성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켈빈과의 기억을 잃은 루비와 켈빈이 우연히 만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시작된다.

현실적인 메시지, 아쉬운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