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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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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 천국>,

격렬하게 적극적으로 게으르고 싶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인터넷에서 먼저 유명해진 뒤 광고에도 등장한 이 멘트, 알고 보니 약 450년 전에 이미 그림으로 나와 있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피테르 브뢰헬이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쟁쟁한 화가들 틈에서 독창적인 스타일로 북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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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지붕 위에 빵이 한가득 널려 있다. 하도 많아서 왠지 이중 한 개는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한 사람이 지붕 밑에 누워 입을 벌린 채 빵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구워진 돼지가 제 등허리에 식칼을 꽂은 채 돌아다니는가 하면, 접시 위로 기어오르는 통닭도 있다. 마치 ‘날 잡아 드십사’하는 것 같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음식이 가득한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아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벌렁 드러누워 음식이 저절로 제 입 속으로 떨어지길 기다린다. 옷이고 체면이고 다 내려놓은 채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를 온몸으로 외치고 있다. 이것이 <게으름뱅이 천국>의 내용이다.
브뢰헬의 <게으름뱅이 천국>은 동명의 소설을 모티브로 한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의 내용은 게으름을 꾸짖는 내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림을 얼핏 봐서는 게으름을 꾸짖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되려 게으름을 찬양하는 것으로도 보일 지경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게으른 모습이 부러운 건, 그만큼 일상이 고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16세기만 해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 북서부 국가에서는 전쟁과 기아가 일상이었다. 한쪽에서는 찬란한 문화가 꽃피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전쟁, 역병, 자연재해 등 이유는 널려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종교의 이름 아래 죽어간 사람 수가 가장 많았다. 종교 개혁 광풍이 불면서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 하는 가톨릭과 썩은 종교를 타파하겠다는 신교도 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죽을 때 죽더라도 배 터지게 먹고 취해 보는 게 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림 속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보면, 지위가 정말로 다양하다. 삶의 무게는 신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죽음은 지위와 무관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겨울 vs 여름, 색채의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