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 대부경궁궐 안의 일을 맡아보는 관직. 종 3품의 일부다처제 도입 주장이 연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월 ×일, 정책 브리핑에서 박 대부경은 상소문을 발표했다.
“예부터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아 성비가 맞지 않은 데다 최근 몽골과의 전쟁으로 많은 남자가 죽어 심각해진 상황입니다. 자고로 우리나라는 사람이 곧 국력인데, 지금과 같은 일부일처제에선 성비 불균형이 이후 출생률 저하로 이어질 게 너무나 자명합니다. 이런 문제를 타개할 방법으로 소신 일부다처제를 적극 주장합니다. 몽골도 부인을 여러 명 맞아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성비 불균형 상태에서 인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여인들도 공녀로 끌려가지 않을 테니 남녀 모두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 주장은 곧 여성들의 분노를 샀다. 게시판에는 ‘인구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게 대세가 될까 봐 걱정스럽다’ ‘남자들은 몽골 침략으로 죽고, 여자들은 몽골에 공녀로 끌려갈까 봐 걱정하고 있을 때, 나리는 일부다처제 하는 몽골이 부러웠나?’ 등의 비난이 줄을 이었다.
이에 대해 박유 대부경은 “일부다처제는 여성들에게도 손해가 되지 않는다. 몽골에 정기적으로 바치는 공녀는 미혼여성과 과부를 먼저 선발한다. 일부다처제는 위장혼인이나 야반도주, 어린아이들의 조혼 등, 공녀를 피하려고 발생하는 여러 폐단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대부경의 해명 후에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해당 부처는 항의 폭주로 업무가 일시 마비된 상태다.
△월 ○일 저녁, 충렬왕의 연등회 행차 길 앞에 여성들이 모여 항의했다. 이들은 박유가 주장한 일부다처제 도입에 대해 즉각 철회를 요청했다.
이들은 ‘여성혐오 조장하는 일부다처제 철회하라’ ‘박유는 대국민 사과하고 사직해라’ 등이 쓰인 피켓을 들고 항의 구호를 외쳤다. 왕의 호위대 사이에서 박유가 나타나자 그 주변에 모여들어 삿대질한 여성도 있었다.
이날 모인 여성들은 특정 단체가 아닌 모두 자유의사로 참여한 개인들이라고 밝혔다. 이 중 한 여성은 “남존여비 사고방식이다. 모든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만 보는 것, 그리고 아내를 가정의 동반자가 아닌 남편의 소유물로 만들겠다는 발상이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한 명도 “중동의 이슬람교도 남성 수 감소로 일부다처제를 도입했지만 결국 여성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한 여성들은 일부다처제 도입을 철회할 때까지 무기한 항의를 이어나갈 것이며, 장소도 연등회만이 아닌 박 대부경의 자택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려시대 여성문제의 대표적인 사건은 앞에서 보았듯 박유의 일부다처제 상소문에서 비롯됐어. 그의 주장 자체는 결코 수용하기 힘들지만, 일부다처제를 통해 고려 여성이 공녀를 피할 수 있다는 의도가 담겨 있어서 무조건 나쁘다고 보긴 어려워.
주목해야 할 건 일부다처제가 여성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는 거야. 이건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하지. 고려는 (왕실을 제외하곤) 일부일처제가 기본이었다는 것과 고려 여성의 지위가 낮지 않았다는 것. 남녀의 사회적 지위가 동등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각종 제도나 문화는 여성을 차별할 수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