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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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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자부심 강한, 당당한, 매력적인 그녀

여성이 화가의 삶을 살기란 불가능에 가깝던 18세기 유럽. 아름답고 재능 넘치는 프랑스 소녀 하나가 당당히 화가의 길을 걸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총애를 받는가 하면, 유럽 왕족과 귀족으로부터 초상화 주문이 쇄도했던 것.
자부심 강한, 당당한, 매력적인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은 그런 점에서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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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을 응시하는 소녀가 어여뻐 그림 속으로 절로 빠져든다. 소녀의 표정은 당당하다. 부끄러움에 물든 홍조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소녀는 붓을 들었다. 발레화를 신은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아름다운 풍광 속을 걷는 것도, 거울 앞에서 한껏 치장 중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제목이 <자화상>이니, 어여쁜 소녀는 화가가 된 모양이다. 

자료를 뒤적뒤적하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정지모드다.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낯선 이름이다. 화사한 색감, 안정된 구도, 버젓한 표정. 오드리 헵번 사진을 볼 때와 같은 그런 느낌? 너무 예쁘고, 너무 아름답다. 예술적 정취나 미술적 담론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이 아름다운 소녀가 어떤 화가로 성장했는지 궁금해졌다. 

여성 화가가 불가능하던 시대의 행운아

18세기에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해도, 여성이 화가가 되기 어려웠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냈다. 울프의 가정은 이것이다. 셰익스피어와 동일한 재능을 가진 여동생이 있다 치자. 그녀 역시 오빠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지적 담론을 즐기며, 작업자들과 뒤엉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모험과 패기로 가득한 그 삶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울프의 결론은 아니다, 였다. 제한된 사회적 관습에 꽁꽁 묶여 재능이 도태되거나, 재능을 열매 맺기는커녕 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서 처참한 삶을 살았을 거라는 얘기다. 

엘리자베스 르브룅(​Ellizabeth Vigee Le Brun, 1755~1842​)이 살던 시대도 비슷했지만, 그녀는 화가가 되었다. 어여쁜 소녀가 아름다운 여성 화가로 성장해간 것이다(그림 1). 그림 속 미모의 여성은 밀짚모자에 격식 없는 옷차림이다. 맑은 눈빛은 흐트러짐 없이 정면을 응시한다. 왼손엔 팔레트와 붓이 들려 있다. 투명한 하늘, 어둠이라곤 모자 아래 드리워진 얕은 그늘뿐. 마리앙투아네트의 공식 초상화가요, 유럽 왕실과 귀족들에게 러브콜을 받은 자부심이 그 당당한 태도에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