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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럿워크,

'여성에게 적합한 복장'이라는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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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럿워크’란 무엇인가요?

2011년 1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경찰관인 마이크 생귀네티가 대학 강연 도중 “여성이 성범죄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헤픈 여자(Slut)’처럼 입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큰 논쟁을 일으켰어요. 그의 말은 마치 여성의 옷차림이나 행동에서 성범죄가 기인한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는 가해자의 명백한 범죄와 그 책임을 도리어 피해자에게 묻는 꼴이며, 자칫하면 성범죄자들의 잘못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 위험한 논리예요. 캐나다의 많은 여성들은 이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일부러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거리에서 행진했어요. 옷을 야하게 입던, 천박하게 보이던,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며 관음이나 범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장을 직접 보여준 것이죠. 이것이 슬럿워크고요.

그리고 이 움직임은 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어요. 그동안 여성들이 감수해야 했던 성적인 대상화에서 벗어나, 일반화되어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던 ‘헤픈 여자’ 선입견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폭발한 거죠. 이 ‘야한 시위’는 국경을 넘어가 2011년 7월 보스톤·시애틀 등 북미 주요 도시와 런던·시드니·멕시코시티까지 대륙을 넘나들며 세계 60여 개 도시로 이어졌죠. 북미 여성운동 진영은 슬럿워크를 지난 20년 새 가장 성공적인 시위라고 평가했어요.

한국판 슬럿워크가 가진 의미는 무엇이며, 이를 두고 어떤 시각이 존재하나요?

우리나라에도 캐나다의 슬럿워크 사례가 SNS 등으로 소개되자 많은 관심과 함께 ‘우리도 해보자’ 하는 여론이 생겨났고, 각계의 활발하고 자발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개최됐어요. 2011년 한국판 슬럿워크는 ‘잡년행진’이라는 다소 파격적이고 거친 이름으로 진행되었죠. 영어의 ‘Slut’과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이 여성 비하 표현으로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지칭하여 자존감을 되찾자는 의도라 해요. 이번 운동은 얼마 전에 벌어졌던 고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에 대한 항의도 품고 있어, 시위 참가자들은 고려대에 모여 피켓을 들고 교내를 행진하기도 했어요. 시위에는 상체에 브래지어만 착용하거나 찢어진 망사스타킹, 달라붙는 원피스 등의 노출이 심한 복장들이 등장했고, 미니스커트에 여장을 한 남성 참가자들도 있었어요. 참가자 일동은 여러 공연과 퍼포먼스를 통해 뿌리 깊은 수동적 여성성에 대한 강요, 그리고 계속 해서 벌어지는 성범죄를 비판했죠. 주최 측은 이날 시위를 통해 모은 후원금을 ‘고대 성폭행 사건 대책위원회’ 등에 전달한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