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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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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의 역설,

편협과 박해를 넘어 인간 존중으로

유엔은 매년 11월 16일을 국제 관용의 날로 정했다. 정치, 종교,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념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의 생명과 자유를 지켜낼 수 있는 관용의 의미를 되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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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의 종교적 관용, 루이 14세의 종교적 불관용

13세기 칭기스칸은 불과 10만 명의 병력으로 로마제국의 두 배, 알렉산더제국의 네 배나 되는 지역을 정복했어. 후대 사람들은 이 불가사의한 힘의 원천 중 하나로 종교적인 관용을 꼽아. 칭기스칸은 ‘나쁜 짓을 하라고 가르치는 종교는 없다’고 생각했고, 나아가 모든 종교가 유용하다고 보았거든. 그는 기독교 여성이 아이들을 잘 키운다고 생각해 며느리로는 기독교인을 선호했고, 행정에는 숫자에 밝은 이슬람교도를 발탁했으며, 전투력을 갖춘 소림사 승려를 보면서 불교는 전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 

칭기스칸은 나아가 종교적 관용을 제국을 다스리는 전략처럼 사용했어. 신앙심까지 무력으로 굴복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지. 따라서 어느 지역을 점령하든 모든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을 선포했고 종교 박해도 금지했어. 그 결과 몽골제국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교, 도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했으며 칭기스칸의 자녀, 며느리, 손자들도 제각기 종교가 달랐을 정도야. 종교적 박해가 없으니 종교적 저항도 없었고. 

하지만 루이 14세(1638~1715​)는 종교적 불관용의 태도를 견지했어. 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처벌을 하고 재산을 몰수해버렸지. 루이 14세의 종교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인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 그 무렵 독일에서 시작된 종교개혁[1]의 바람이 프랑스로 옮겨왔거든. 

종교개혁의 바람이 프랑스에 닿자 신교도(개신교)들은 부패한 가톨릭을 비판하며 개혁하고자 했어. 당연히 기득권을 가진 가톨릭 세력이 가만히 두고 볼 턱이 없지. 가톨릭을 믿지 않는 사람은 투옥하거나 재산을 빼앗았고, 신교도를 신고하면 그의 재산을 몰수해서 4분의 1을 신고한 사람에게 주는 법도 만들었어. 신교도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고. 이때 살해된 신교도 수가 6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돼. 치안, 경제, 도덕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사회는 엉망이 돼버렸어. 이런 혼란은 무려 30년 넘게 지속됐어. 이 혼란을 다잡은 사람은 앙리 4세(​1553~1610​)였어. 1589년 왕위에 오른 앙리 4세는 가톨릭 외에도 칼뱅주의 개신교 교파인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칙령을 반포했어. 그래서 다시 사회질서가 잡히고 경제도 살아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