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월 ○일
오늘 도서관의 고서적들 틈에서 놀라운 책을 발견했다. 애타게 찾던 외규장각[1]은 아니지만, 표지에 ‘직지(直指)’라고 쓰인 책이다. ‘COREEN’이라는 도장이 찍힌 걸로 보아 우리나라 고서적이다. 표지에 프랑스어로 적혀있는 한 구절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한국 인쇄본’
맨 뒷장을 보니, ‘선광7년정사7월 일(宣光七年丁巳七月 日)’이라고 적혀있다. 발행일인 듯싶다. ‘선광 7년’은 고려 우왕 3년으로 1377년이 맞다. 게다가 청주의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글귀도 적혀있었다.
숨이 턱 막히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만약 이게 사실이면,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도 78년이나 앞선 서적이 되니까.
1972년 ○월 ○일
금속활자와 목판활자의 차이를 알 것 같다.
- 목판활자는 한 페이지 단위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같은 글자라도 페이지마다 모양이 다르다.
하지만 금속활자는 글자 단위로 주형을 만들기 때문에 같은 글자끼리는 모양이 똑같다.
- 목판활자는 오래 사용하면 글자 획이 닳아 없어진다. 금속활자도 오래 사용하면
마모된 부분이 인쇄되지 않아 획이 가늘어지지만, 형태는 남아 있다.
- 목판활자에는 나뭇결을 따라 칼자국이 나타난다.
- 금속활자 인쇄본은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먹물색에 반점이 나타난다.
- 금속활자 인쇄본은 글자 모양이 가지런하지만, 글자 간격이나 줄 배열은 불규칙하다.
수많은 실험으로 알게 된 사실은, ‘《직지》는 금속활자 인쇄본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곧 유네스코 행사가 열린다. 도서관 측은 내 주장을 믿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동안 내가 알아낸 사실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뿐.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주어도 나에게 당장 이득이 되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아질 것이다. 문화재의 힘은 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