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만 봐서는 도대체 뭘 그린 것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아.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이라니? 그림을 보면, '아, 회색과 검은색이 많이 쓰여서 이런 제목이 붙었구나’ 싶지만, 그래도 의아해. 작품 중앙에 앉아 있는 노부인은 그림의 제목과 무슨 상관이 있나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 이유를 알아볼까?
노부인의 정체는 바로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인 제임스 휘슬러의 어머니, 안나 휘슬러야. 그녀는 상당히 강인한 인물이었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으나 자식 다섯 명을 씩씩하게 홀로 키워냈거든. 특히 첫째 아들인 화가 제임스 휘슬러의 미술 재능을 빨리 알아차려서 프랑스 파리에 유학까지 보내주었지. 화가는 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데다, 신앙심이 깊어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는 어머니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아.
휘슬러는 이 그림에서 색채와 구성, 선의 형태 등을 적절하게 사용해 어머니의 성격을 묘사하려 했어. 작품을 보면 직선이 유달리 많이 등장해. 벽에 걸린 액자 두 개를 비롯해 일자로 떨어지는 커튼, 하단을 가로지르는 마룻바닥까지 모두 직선으로 구획되거든. 이는 관람객에게 작품 속 노부인이 주위를 잘 정돈하는 꼼꼼한 성격이리란 암시를 주지. 또 방 안에는 화병은 물론이고 별다른 장식물이 없는데, 이 역시 검소하게 종교적 삶에 몰입하는 어머니의 태도를 드러내.
노부인의 검은 드레스는 직선 투성이인 배경과 달리 완만한 곡선을 이루어 우아한 인상을 전하지. 꼿꼿하게 등허리를 펴고 앉은 노부인의 자세는 그녀가 편향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 균형감을 지녔음을 나타내고. 의자에 발을 올린 모습 또한 단정한 태도를 묘사하는 한편, 노부인이 무언가 숨기는 것 없이 청렴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줘. 즉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이란 작품 제목은 그림에 많이 나타난 색을 가리킬 뿐 아니라, 무채색이 주는 느낌처럼 소박하면서도 절제하며 살았던 화가의 어머니를 묘사하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