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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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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이상향을 떠나 현실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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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현실로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 중반의 서양 미술은 ‘이상의 재현’을 모토로 삼았다. 아카데미 미술[1]은 수백 년간 얼마나 사실적으로 대상을 묘사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평가했다. 이때의 사실적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닌, 이상향을 눈앞에 있는 것처럼 자세히 묘사하면서도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화가들은 원근법, 비례법, 채색법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완벽한 이상적 아름다움을 그려내고자 했다. 자연스레 예비화가들에게는 이러한 기법을 익힐 수 있는 아카데미의 미술학교 입학이 매우 중요했고, 미술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해 살롱에 전시하는 것이 목표였다. 역사적 위인이나, 종교와 신화의 세계에 나오는,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적 존재가 그림의 주인공이었다. 

이러한 미술사의 흐름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달라진다. 프랑스혁명과 뒤이은 산업혁명, 카메라의 발명 등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회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귀족 중심의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신흥 부르주아 계층이 부상하면서 귀족들이 독점해온 미술 영역도 흔들리게 된다. 완고한 아카데미 미술에 대한 도전이 그것이다. 또한 다양한 계층의 보통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화가들은 자연히 아카데미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상을,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한편 사진기의 발명은 화가들에게 새로운 위협이었고, 그들에게 과제를 던졌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은 화가들에게도 무엇을 어떻게 그림에 담아내야 하는가에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숙고 끝에 화가들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통찰을 작품 속에 담고자 노력하게 됐다. 

사실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19세기 후반 사실주의 예술사조가 등장한다. 사실주의 시대를 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가 <오르낭의 매장>을 1850년 파리 살롱에 발표하자마자 비평가들은 엄청나게 비난했다. 당시 비평가들은, 너무나 평범한 내용을 신화나 역사 속 장면처럼 거대한 캠퍼스에 그린 쿠르베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사실주의 작품은 감상할 이유도, 가치도 없었다. 하지만 쿠르베는 비평가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허황된 이상향을 그리는 것보다 현실 그대로를 그려 보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 뒤로 쿠르베는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돌 깨는 사람들> <시장에서 돌아오는 플라지의 농부들>처럼 제목만 봐도 평범한 일상을 화폭에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