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고 다리도 아프지만 놀이기구를 타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누군가 새치기를 한다면? 결코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놀이공원이 새치기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국의 많은 놀이공원들이 일반 입장료의 두 배가량을 내면 줄의 맨 앞으로 갈 수 있는 허가증을 준다. 그러니까 정가를 지불한 사람들은 부가금을 지불한 사람들의 새치기를 묵인해야 한다. 그래서 놀이공원을 포기하고 바로 옆 빌딩의 초고층 전망대에 오르려고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이 빌딩은 너무나 유명해 전망대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헌데 여기서도 우선 탑승권을 판매하고 있었다. 헐!
여러분이 회사에 다닌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회사가 여러분의 동의도 없이 생명보험에 가입해둔다면 기분이 어떨까? 이는 실제 미국의 몇몇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직원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해 직원이 사망할 경우 가족도 모르게 회사가 보험금을 챙기는 것이다. 물론 회사는 직원이 사망할 경우 그들의 자리를 다른 인물로 대체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상쇄하기 위한 대비책에 불과하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여러분이 점차 나이가 들면서 회사는 여러분이 빨리 사망하길 기대하지 않을까? 또 직원이 빨리 사망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들의 건강과 안전을 강구하는데 인색하게 구는 건 아닐까? 여러분의 생명이 기업의 돈벌이 대상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러한 예는 어떤 대상에 시장논리 혹은 상품화가 적용되는 구체적 사례이다. 그러니까 새치기나 생명이 상품이 되었다는 말이다. 마이클 샌델은 그의 최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세계가 점차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면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지 않느냐며 수많은 사례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다.
책 제목을 처음 접한 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헌데 내 생각은 꽤 순진한 것이었다. 샌델이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오늘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거의 없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하루에 82달러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죄수는 깨끗하고 조용한 개인 감방으로 옮길 수 있다. 인도에서는 여성의 자궁이 합법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6,250달러를 지불하면 아기를 대신 낳아 줄 대리모를 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은 탄소배출 시장을 운영해서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게 한다. 환경을 오염시킬 권리를 사고팔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부 명문대에서는 학생이 자격 미달이어도 부모가 상당 금액을 대학에 기부하면 입학을 허락하기도 한다. 입학허가증도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