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5년경 구텐베르크는 포도주 짤 때 쓰는 압착기를 개조해서 근대적인 인쇄기계를 만들어냈다. 고려시대(918~1392년)의 《직지심경》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긴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의 성과와 견주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구텐베르크 인쇄기는 번거로웠던 인쇄술을 기계식으로 개발해서 대량 인쇄의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1999년 말 새 천 년을 앞두고 타임지는 천 년 동안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발명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선정할 만큼, 그의 인쇄혁명은 당대뿐 아니라 인류사 전체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인쇄기의 등장은 성경과 지식을 독점하던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철퇴를 내렸다. 그 무렵 양피지에 필사 작업으로 만든 성경 66권 한 질을 사려면 집 열 채 값을 주어야 했다. 따라서 성경은 수도원과 교회만 소유할 수 있었고, 교회는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격을 해석, 견고한 권위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성경이 대량 보급되면서 교회의 교리해석에 대한 비판이 가능해졌고, 교권은 도전받았으며, 교회는 이를 방어하고자 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중산층의 독서를 넓히고, 지식 대중화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했다. 종교계와 통치자들은 인쇄물이 대중화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고, 여론을 통제하는 한편 교회의 권위나 통치자에 대한 모독을 단속했다. 모든 인쇄기에는 공식인증 허가서를 부착해야 했고, 책들은 모두 출판 전에 출판 및 배포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자 16세기 개혁적 성향의 사람들은 팸플릿(겉표지 외에 5~48쪽 분량의 제본하지 않거나 약식으로 제본한 작은 책자)으로 대항했다. 종교적 논쟁을 다루면서 교권의 횡포로부터 대중을 일깨웠고, 이러한 움직임은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팸플릿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일종의 ‘화염병’ 구실을 톡톡히 했다. 17세기에 팸플릿은 반정부 세력과 정부 세력 사이의 지면 전쟁터였다. 특히 팸플릿은 책이나 신문보다 인쇄비용이 저렴했고 배포가 쉬웠으며 권력의 감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당시 수천 부씩 인쇄돼 카페나 서점에서 팔린 정치 팸플릿은 체제에 대해 반항적이었으며, 여론 형성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 팸플릿에는 17세기 영국 혁명기에 활동한 평등주의 운동가 존 릴번의 투옥 사실을 알렸고, 릴번은 감옥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민주적 권리를 강조하고,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글을 팸플릿에 기고했다. 이러한 힘들이 근대의 민주주의를 탄생하는 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