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처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였다. 일명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노인들이 카페에 자주 왔다. 태극기를 등산 가방에 꽂고 온 이들은 ‘음료가 왜 이렇게 비싸냐’ ‘벤치에 앉게 해주면 안 되냐’ 같은 곤란한 질문을 수시로 던졌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넘어,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기 싫었다. 난 그들을 ‘꼰대’라고 정의 내리고 잊어버렸다. 그래서 남성 노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다룬 책 《할배의 탄생》을 처음 알았을 때 ‘도대체 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의문이 든 게 사실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궁금증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인 최현숙도 이 작업을 ‘위험해서 매혹적’이라고 했다.
《할배의 탄생》은 김용술과 이영식, 두 남성 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위인전이나 자서전과는 형식이 사뭇 다르다. 《할배의 탄생》은 주인공의 입으로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직접 들은 다음 최소로만 재구성하는, 이른바 ‘구술생애사’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말의 형태로 한 사람의 생애를 전해 듣고, 그를 통해 사회와 역사를 해석하는 일종의 연구 방법이다. 구술생애사의 주인공은 주로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다. 자신을 내보일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직접 책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하면 된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의견을 세련된 방식으로 잘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노인, 여성은 그럴 수 없다. 구술생애사는 이들에게 마련해주는 자리다.
“당연히 첫 번째는 내가 문제야. 돈 벌 때 흥청망청 쓰고, 술과 여자로 놀고. 나는 그건 인정해. 그걸 인정 안 하면 나쁜 놈이지. 그러구는 배움이 부족했던 거라고 봐. 대한민국이 학벌사회래잖아. 가방끈이 짧은 놈은 벌어먹는 게 빤해. 아무리 기술직이었더래도 그게 한 물 가면 몸으로 때우는 거 말로는 할 게 없어.” 김용술
“원형 돌아가는 거나 삼각형 법칙이나 그런 걸 응용해야 할 때, ‘아 내가 좀 더 배웠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 같은 목수라도 공부를 좀 했으면 하는 일도 많이 달랐을 거예요. 돈도 돈이지만 일을 더 넓게 잘 했을 것 같아요. 나는 목수 일이 좋았거든요.” 이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