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사회과학자들은 나름대로 일종의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다. 사회과학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열망에서 생겨났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상적 상태를 추구하려는 욕망을 숨겨 놓고 있다. 사회과학자들이 세상의 법칙을 발견하려 하는 것은,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내려 할 때와는 좀 다르다. 연구자가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사회 안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이나 미세한 원자의 움직임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완전경쟁 시장’이다. 경제 공부는 시장 원리를 배워나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호에서 시장 원리를 그래프로 설명했다. 이때 설명을 생략한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시장을 설명하기 위한 어떤 전제 같은 것이다. 경제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시장 원리를 설명하며 제시하는 시장의 그래프는 암묵적으로 ‘완전경쟁 시장’을 가정한다. 문제는 완전경쟁 시장은 평소에 우리가 만나는 시장과 달리,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완전경쟁 시장이란 가격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완전히 평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시장을 말한다. 기술력의 차이도 없고, 자본력의 차이도 없다. 누구나 이 시장에 들락날락할 수 있다. 완벽히 자유로운 시장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시장이다. 식당을 떠올려보라. 음식 맛이 모두 제각각이다. 파리 날리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식당도 있다. 맛의 차이가 극명히 갈리기 때문이다. 음식의 맛이야 다를 수 있지만 ‘쌀 시장’ 같은 건 완전경쟁 시장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쌀도 품종 개량으로 인해 질적인 차이가 커지고 있다. 유기농 쌀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품질이 거의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 쌀마저 품질 차이가 난다면 다른 농산물은 말할 것도 없고, 공산품은 더욱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