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영화 <공각기동대> 홍보를 위해 우리나라에 온 스칼렛 요한슨에게 기자가 물었어. 영화에서처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수트가 있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 뭐냐고. 남학생들에게 ‘투명인간이 된다면 뭐 할래?’라고 물으면 대부분 ‘은행’과 ‘여자목욕탕’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답을 내놓는다는데, 그녀는 ‘청와대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알아낸 다음에 탄핵 관련 답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던졌어.
이런 류의 상상은 동서고금에 넘쳐나. 우리나라에는 도깨비감투 설화가 있어. 감투를 쓰면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는 신기한 도깨비감투를 얻은 주인공이 도둑질을 하고 다니다 혼쭐이 난다는 얘기야. 그리스신화에는 ‘하데스의 모자’가 나오는데,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 하데스는 모자를 쓰면 모습이 보이지 않아. H. G. 웰즈의 소설 《투명인간》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버전을 바꿔가며 지금까지도 계속 제작되고 있어. 또 해리포터도 숙적 볼드모트에 관한 실마리를 쫓아가는 과정에서 투명 망토를 손에 넣게 돼.
이 중에서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는 투명인간에 대한 은유로 빈번하게 쓰이는 소재야. 목동 기게스는 우연히 반지 하나를 얻는데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돌리면 투명인간이 된다는 걸 알게 됐고, 반지의 힘으로 왕을 암살하고 왕위를 빼앗는다는 얘기야.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이 남의 눈에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무엇을 할까 상상하면 대부분 나쁜 짓을 꿈꾼단 말이지. 공공기관에 마음대로 침입하고, 은행에 들어가서 돈을 훔치고, 여탕 남탕을 들여다보는 성범죄를 꿈꾸고. 몰래 남을 돕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니? 인간의 본성이 어쩌면 악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