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 해저드(moral hazard)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종종 쓰이는 용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고 시장의 아주머니까지 인용할 정도니, 보편적인 용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리는 모럴해저드를 흔히 ‘도덕적 해이’라는 말로 번역합니다. 이 때문에 길가에 침을 뱉는 행위와 같이 비교적 가벼운 도덕성의 추락이나 의사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비싼 치료나 약을 권하는 것처럼 윤리의식의 부재 등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포괄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경제학에서나 각종 정책의 운용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용어, 모럴해저드는 좀 더 파급력이 크고 이기적인 구체적 사례들로 구성됩니다.
모럴해저드는 원래 보험 및 중고차 시장에서 사용하던 용어입니다. 예를 들어 보험 가입자가 보험을 믿고 사고예방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도덕적 해이에 해당하죠. 이럴 경우 보험 가입자의 부주의로 사고가 늘어도 보험사는 이를 확인할 길이 없어 손실액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 중고차를 판매하는 사람이 중고 차량의 상태를 정확히 설명하지 않고 판매하는 것도 모럴해저드라 할 수 있죠. 차량의 상태가 안 좋은데 비싼 가격에 파니 이를 인수한 사람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이후 잦은 고장으로 손실은 더 커질 수 있고요.
모럴해저드가 유발되는 좀 더 명확한 사례를 들어 볼까요? 열 세대가 사는 다가구 주택이 있는데 수도 계량기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집주인은 전체 수도세를 1/10로 나누어 각 세대에 부과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때 각 세대는 물을 낭비하더라도 자신이 부담하는 수도세는 1/10에 해당하기 때문에 물을 아껴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모럴해저드인 거죠. 물을 낭비한 사람은 이익을 볼지 모르나 절약한 사람은 그만큼 손실을 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아껴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 사회적으로 물이 낭비되는 구조를 갖는 거죠.
그러니까 경제 분야에서 모럴해저드는 대개 상대방의 향후 행동을 예측할 수 없거나 본인이 최선을 다한다 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별로 없을 때 발생합니다. ‘나 하나쯤이야’하는 바로 그 생각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