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간은 다른 생명과 마찬가지로 숲에 깃들어 살았다. 숲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인간이 문명을 일구면서 숲과 문명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문명은 숲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나일, 황하는 인류 문명의 발생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모두 큰 강과 울창한 숲이 있던 곳이었고, 인류는 이 풍부한 자원을 이용해 도시를 건설했다. 도시 문명이 시작되자 인구는 계속 늘어났으며, 농사를 위한 관개수로가 필요했고, 집과 사원을 계속 건설해야 했다. 목재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인더스 문명(기원전 3300~1700년)의 대표적 유적 모헨조다로 발굴 유적만 봐도 얼마나 수준 높은 도시를 건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은 기본이요 대목욕탕, 곡물창고, 대회의장 등을 갖췄는데 대부분 불에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주변의 산림은 급속도로 파괴되었고, 토양이 빠른 속도로 침식돼 가뭄과 홍수가 반복해서 일어났다. 숲의 반격이었다.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는 더 심했다. 전쟁이 잦았으니 무기와 함대를 만들기 위한 구리와 철의 채굴을 위해 숲을 파괴해야 했다.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로마의 목욕탕 문화를 떠올리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 시내 한 군데에만 11개의 대형목욕탕과 856개의 작은 목욕탕이 있었다. 이 물을 데우는 데는 엄청난 나무가 필요했다. 산업혁명 이후, 숲과 인간 문명 사이의 줄다리기는 문명의 완승으로 끝났다. 인류는 자신들만을 위한 문명을 완고하게 구축했고, 숲과 숲에 깃들어 살던 온갖 생명은 점차 사라져갔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숲의 신 훔바바를 보고 싶소. 나는 레바논 삼나무 숲에서 훔바바를 잡을 것이오. 그런 다음 삼나무를 베어, 내 이름을 길이 남길 것이오.”
기원전 2600년경 수메르 왕조시대에 쓰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이 나무를 베어 웅장한 왕국을 건설하려 했다. 하지만 이 숲은 수메르 최고의 신 엔릴의 명을 받은 괴물 훔바바가 지키고 있어 난공불락이다. 어느 날 길가메시는 친구 엔키두와 계략을 짜서 괴물 훔바바를 없애고 숲의 나무를 베어낸다. 그로 인해 가뭄의 신의 공격을 받았고 이를 겨우 물리쳤지만, 결국 대홍수는 막지 못했다. 이 얘기는 환경파괴와 그로 인한 자연재해에 대해 인간에게 보내는 최초의 경고로도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