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난영화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영화에서 나오는 재난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몰입하기가 힘들다(초대형 해일이나 몇십 개가 연달아 오는 허리케인 등…).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가는 장면을 몇 시간씩 보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용이 전부 거기서 거기라 별로다. 홀로 자연재해를 경고하는 과학자와 무능한 정부, 위험에 처하는 주인공과 민폐를 끼치는 여성 캐릭터, 대미를 장식하는 눈물겨운 희생 장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클리셰의 향연!
그런데 재난영화의 법칙을 위트 넘치게 비꼬아 풀어낸 작품을 만났다. 뻔한 장면을 답습하는 대신 참신한 연출과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국산 영화, <엑시트>다.
<엑시트>에는 젊은 주인공 두 명이 등장한다. ‘이용남’과 ‘정의주’는 같은 대학을 나온 선후배 사이로, 한때는 산악 클라이밍 동아리의 에이스였지만 졸업 이후에는 그저 그렇게 살고 있다. 집안의 늦둥이이자 장남인 용남은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며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신세고, 의주는 연회장 ‘구름정원’의 서비스직으로 일하는 사회 초년생이다.

어느 날 용남의 가족은 어머니의 칠순을 맞아 잔치를 벌이려 구름정원에 모인다. 용남과 의주는 오랜만에 재회하지만, 무슨 일인지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어색 그 자체. 과거에 용남이 의주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으나, 의주가 친구로 지내자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입이 트인 의주는 부점장이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아르바이트랑 다를 바 없다며 신세를 자조한다. 칠순 잔치 내내 친척들의 구박에 시달리던 용남은 의주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벤처 기업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며 얼떨결에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이렇듯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백수 신세인 용남은 매일 아파트 놀이터 철봉에서 시간을 때우고, 의주는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악덕 점장의 추근거림에 시달리며 직장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래서인지 나는 순식간에 영화에 빠져들었다. 고개를 돌리면 어디에서나 만날 법한 전형적인 한국 청년을 그려내 단번에 공감이 됐다. 이렇게 ‘평범한’ 주인공들이 끔찍한 재난의 한복판에 던져지며, 영화는 본격적인 탈출기로 변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