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영국에서 20년 넘게 거주한 일본인으로, 아일랜드인 배우자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초등학생 시절 아들은 다양한 인종이 다니는 학교에서 폭신한 솜털에 둘러싸인 듯 안온하게 자랐다. 문제는 중학교에 입학하며 불거진다. 그곳은 영국 백인 아이가 90% 이상인 학교로, 아일랜드인 배우자는 우리 아들은 동양인 외모에 가까우니 반드시 인종차별을 당할 거라며 걱정한다.
예상외로 아들은 학교에 수월히 적응한다. 친구도 곧잘 사귀고, 음악반과 연극반 등 동아리 활동도 잔뜩 한다. 어느 날 학교에 간 아들은 ‘블루’가 어떤 감정을 뜻하는 말인지 배워 온다. 영미권 사람들은 푸른색을 ‘우울’ ‘슬픔’이라는 뜻으로 읽는데, 아들은 이제껏 이 단어가 ‘분노’인 줄 알았다고 한다. 며칠 뒤, 작가는 아들 방을 청소하기 위해 들어간다. 허겁지겁 등교한 흔적이 역력한 방 안, 책상 위에 아들의 공책이 펼쳐져 있다. 무심코 흘깃 본 페이지에 적힌 글귀.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위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숨을 흡, 들이켰다. 혹시나 아이가 심한 차별이나 폭력에 시달린 것은 아닐까, 마음 아플 준비를 단단히 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웬걸, 막상 책을 읽어보면 몽글몽글 따뜻하기 그지없는 내용이 가득하다. 책에는 분명 인종차별·정체성 혼란·영국의 계급 갈등 등 복잡하고도 무거운 문제가 여럿 등장하는데… 그런데도 입가에 미소를 띠고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까닭은 이 갈등이 아이들의 세계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인 만큼 아이들 역시 복잡미묘한 불화를 겪지만, 어른과는 달리 상대방과의 차이점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자라난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알고 보니 너 꽤 괜찮은 녀석인데?” 하며, 혹은 말없이 조용한 눈짓으로 갈등을 봉합하고 친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은 인종·소득·거주지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편을 갈라 싸우지만 도무지 화해할 줄 모르는 어른들에게 깨달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