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5일, 미군이 떠나고 탈레반이 아프간에 돌아왔다. 2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도중 일부는 비행기 날개에 매달리기까지 했고, 탈레반에 대한 두려움으로 거리에선 여성들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탈레반은 새 정부 구성을 발표했으나 아프간엔 여전히 혼란과 공포가 되고 있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가슴을 졸이고 있다. 국가와 정부에 대한 개념이 명확한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게 됐을까?
아프간의 현재를 알려면 세계사적인 이해가 필요하고, 나아가 제국주의 시대 서구 열강, 이후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의 이해관계 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짚어볼 작정이다. 이에 앞서 아프간의 지정학적 특징을 먼저 살펴보려 한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지리에서 시작되었으니. 《지리의 힘》을 쓴 팀 마샬은 “이념들은 부침이 있지만 삶을 규정하는 지정학적 진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고 말했다. 아프간의 특수한 지형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아프간은 ‘중앙아시아의 중앙’이라 불리는 천혜의 요충지다. 아시아와 유럽을 육로로 오가려면 꼭 아프간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덕에 아프간은 여러 문명의 꽃을 피웠다. 이는 한편으로 고대부터 외부 세력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아왔음을 뜻한다. 실제 아프간의 역사는 그리스, 페르시아, 몽골, 영국 등 제국의 침략사로 뒤덮여 있다.
하지만 어떤 제국도 아프간을 완벽하게 손아귀에 넣을 수 없었다. 지형이 너무 험준해서다. 국토의 50% 이상이 해발 2000m 이상인 데다가(한라산이 해발 1947m다), 해발 5000~7000m에 달하는 힌두쿠시 산맥이 영토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이 산맥들은 바위가 크고 드높아 침입이 어렵고, 은신할 수 있는 굴도 많다. 이러한 지형 때문에 17세기까지 여러 제국이 침략했지만 몇몇 도시만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대다수 주민이 살아가는 산간지대까지는 권력이 미치지 못했다. 또한 지형이 험준해 왕래가 어려워 수많은 민족이 중앙으로부터 통제와 간섭을 받지 않고 전통적이며 독립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결과 부족들은 내부인끼리는 잘 뭉치지만 외부에는 배타적인 성향을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