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10년에 걸쳐 아프간과 전쟁을 치른 소련은 안정된 사회는커녕 완전한 폐허 속에 낡은 사회시스템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그리고 소련이 아프간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후에 아프간을 파국으로 몰아갈 군벌이 차츰 몸집을 불려갔다. 미국과 이슬람 사회는 이들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아프간에 파괴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략하자 미국은 새로운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1955~1975)에서 패배해 막대한 정치·경제적 충격을 입었던 미국은 아프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그렇다고 소련과 대놓고 싸우면 새로운 세계대전으로 번질 위험이 있으므로 자신들의 역할을 대신할 장기말이 필요했다. 소련에 격렬하게 저항하던 아프간의 군벌 세력이 제격이었다. 미국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이용했다. 파키스탄은 아프간과 약 2600㎞에 이르는 국경을 접하는 데다 파슈툰족 자치구를 통해 아프간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파키스탄 듀랜드 라인 인근에 아프간 군벌 훈련기지를 세웠다. 군사작전 수립 및 차량 폭탄·지뢰 사용법 등을 가르치는 특별훈련을 시행했고, 위성을 이용해 소련군의 통신을 엿듣는 기술도 전수했다. 또 5000억 원 이상을 들여 최신식 무기를 지원했다. 대표적인 게 미국이 1986년부터 보급한 스팅어 미사일이다. 헬리콥터나 전투기의 엔진 같은 열원을 추격하는 적외선 미사일로, 무게 15㎏·길이 1.5m로 휴대가 가능해 게릴라 전술을 펴는 군벌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당시 소련군은 아프간의 험준한 산맥 때문에 지상전에선 힘을 못 쓴 반면 공중전에서 우위를 점했는데, 군벌들이 스팅어 미사일로 전투기를 격추하자 기세가 크게 꺾여 3년 후 패퇴하고 만다.
소련을 몰아내기 위해 미군은 이처럼 군벌을 체계적으로 육성했다. 소련과 아프간 전쟁 10년 동안 이들 군벌은 대부분 무자헤딘 7개 파로 통합된다. 소련이 물러간 아프간에서 새로운 권력 집단으로 떠오른 무자헤딘은 정부군과 내전을 벌이는 와중에 내부 투쟁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신성처럼 떠오른 세력이 바로 탈레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