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법이 있고, 사람들은 다양한 법을 이런저런 관점에 따라 분류한다. 가장 기본적인 분류는 불문법과 성문법으로 나누는 것. 불문법不文法은 한자어의 뜻 그대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법을 뜻한다. 세상에 문장으로 규정해놓지 않은 법이 있다니?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글로 쓰여 있지 않지만 우리 생활에 강한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는 법들이 실제로 많이 있다. 관습법, 판례, 조리에 대해 공부해보자.
사회 규범의 한 종류로는 ‘관습’이 있는데, 관습법은 그보다 강제성이 더 강하다. 명문화되어 있지 않아도 법률과 비슷한 효력을 발휘하고 재판을 할 때에도 법 규정처럼 참고한다. 2002년 대선에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를 현재 세종시가 있는 충청지역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대통령 취임 이후 행정수도 이전을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좌절되었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릴 때 근거로 삼은 것이 관습 헌법이다. 헌법에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고 명문화돼 있지는 않지만, 관습 헌법에 의해 인정된다는 논리였다. 이 판결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관습법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헌법 조문 어디에도 서울이 수도라는 조항은 없지만 관습 헌법상 존재하므로, 행정수도 이전은 아무리 국회에서 법률을 통과시켰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선포였다.
참고로 당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원래 불문 헌법은 영국처럼 성문화된 헌법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적용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관습 헌법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비판이 있었다. 정치적 논란이 이어졌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대한 최종 해석권을 가진 유권해석 기관이므로 법률적 결론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현재 세종시가 일부 행정부처만 이전한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된 배경이다.
만약 법이 세상의 모든 사례를 기계적으로 판결할 수 있도록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면 판사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일은 단순하지 않고, 법을 실제 사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판사들이 해석하고 결론 내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수한 사건 사고에 대한 판결이 쌓이면 판사들은 일정한 유형의 사건에 대하여 이전의 재판관들은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참고하게 된다. 이런 참고가 법률적 효력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 이를 판례법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