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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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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 해설

《이기적 유전자》,

유전자의 의미를 찾는 용감한 여정의 출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노래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무튼 확실한 것은 우리가 유전자의 존재를 깨닫기 전까지 유전자의 의미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유전자의 의미는 우리가 만든다. 유전자를 착하다, 나쁘다 가릴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다. 우리가 주체고 유전자는 객체다. 유전자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미 주와 객이 전도됐다.
자, 이것은 우리를 빚은 유전자의 목줄을 풀어헤치고 유전자의 의미를 찾는 용감한 여정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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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 우리를 빚는 방법

유전자의 특징은 자기를 복제한다는 것이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는 식으로. 하나가 100만 개로 불어나는 증식은 겨우 스무 번의 복제로 이뤄진다. 이쯤 되면 유전자가 순식간에 세상을 뒤덮을 것 같다. 하지만 유전자 복제는 공짜가 아니다. 유전자의 수가 많아지고, 복제에 필요한 주변의 자원이 고갈되면서 유전자는 더 이상 단순한 복제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복제는 계속될 수 있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유전자의 복제가 가끔 불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유전자는 이따금 원래 자기 모습과 다른, 변이된 유전자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복제를 위해 다른 유전자를 잡아먹거나 다른 유전자와 손을 잡는 등 새로운 복제 방법을 가진 유전자가 탄생했다. 주변의 자원이 고갈된 이후에는 이렇게 변이된 유전자들이 자신의 복제를 이어가는 데 더 유리했다. 자원에 대한 싸움에다 먹고 먹히는 싸움이 가세했다. 바야흐로 유전자 전쟁의 시작이다. 그리하여 점차 더 복잡한 무기와 방어기관을 가진 유전자들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하나의 유전자는 복잡한 무기와 방어기관을 만들기에 역부족이었다. 여러 개의 유전자가 모여 하나의 개체를 이룸으로써 복잡한 무기와 방어기관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 유전자들이 탄생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는 걷잡을 수 없었다.

수억 년에 걸쳐 유전자는 사람을 포함해 각기 다른 창과 방패를 갖춘 여러 생물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 어떤 유전자가 살아남았을까? 대체 어떤 유전자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했기에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에 ‘이기적’이라는 수식을 붙였을까? 세상에는 이기적인 행동보다 이타적인 행동이 훨씬 많아 보이는데 말이다. 유전자가 생물에 새겨 넣은 본능이 이기적인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의미로 이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걸까?

살아남은 유전자 = 이기적 유전자

개체는 유전자에 그려진 대로 태어난다. 유전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반면 개체의 행동은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일 수 있다. 유전자에 개체의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본능이 그려져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기적인 본능이 그려진 유전자가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본능이 그려진 유전자는 이타적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기적인 본능이든 이타적인 본능이든, 어떤 본능이 그 본능을 만들어낸 유전자의 번식에 유리하지 않다면 그 본능을 만드는 유전자는 더 이상 퍼지지 못한다. 따라서 어떤 본능을 만드는 유전자가 퍼진다는 것은, 즉 어떤 본능을 가진 개체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 본능이 적어도 그 유전자에는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뜻이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