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 미국의 주요 도시에선 인종 분리 경향이 심각해졌다. 흑인들은 도심지역에 모여 절대 빈곤에 허덕이며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고 백인들은 도심 외곽의 부유한 주택가에 모여 살았다. 사회학자들은 이 원인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 원인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 당시 고용, 승진, 급여에 있어 만연해 있었던 인종차별 양상이 주된 원인인 것. 인종 분리와 인종주의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게임이론으로 높은 업적을 쌓은 미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은 이 당연해 보이는 상황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가 ‘수리사회학’ 학회지에 발표한 44쪽짜리 논문에는 이 상황을 모형화한 두 가지 실험이 있었다.
체스판에 검은색과 흰색 동전을 골고루 섞어놓는다. 체스판의 네모 칸은 집이고 흰 동전은 백인, 검은 동전은 흑인이라고 가정한다. 셸링은 규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동전을 옮기면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살폈다. 먼저 첫 번째 실험에선 ‘사람들이 인종주의자여서 이웃에 자기와 다른 인종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사를 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놀랄 것도 없이 이 상황에선 흰 동전과 검은 동전이 빠르게 분리됐다. 인종주의가 만연하면 인종 분리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다.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두 번째 실험에선 이웃에 다른 인종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세웠다. 다만 어떤 인종이든 주변에서 절대적 소수가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만일 30% 미만의 극단적인 소수가 되는 경우에만 이사한다는 가정이다. 이 실험의 상황엔 인종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소수가 되기 싫은 특성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실험의 결과 역시 첫 번째 실험과 다르지 않았다. 극단적인 인종 분리가 나타난 것이다. 당초 모두가 인종 통합을 만족하는 상황에서 어떤 균형이 발생할 것이라 여겼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실험 결과 인종주의가 극심한 경우 인종 분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인종 분리의 원인을 인종주의로만 환원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두 번째 실험이 시사하는 바다. 미래에 인종주의가 완전히 불식된 사회가 존재할 경우에도 인종 분리가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눈치가 빠른 학생들은 알아챘을 것이다. 이 실험이 추구하는 방식이 기존에 인간사회를 분석해오던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다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