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강한 것과 약한 것을 나누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패배감에 젖어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후회스러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선생님께 부당한 차별을 당했지만 말대꾸하지 못했던 경험이나, 부모님께 내 잘못에 비해 과도하게 혼났지만 말대답하지 못했던 경험은 없는가? 또래 아이들을 협박하고 겁주는 소위 ‘날라리’ 아이들에게 부당하게 당했지만 보복이 두려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경험은?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무기력함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패배감에 젖는다는 표현이 얼마나 기만적으로 들릴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나도 당신도, 우리가 무기력한 것은 당연하다.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폭력과 압박에 시달린 사람의 분노와 좌절도 당연하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저 하염없이 무릎 꿇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패배감을 느끼는 것이 우리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세상은 뒤집혀 있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세상은 누군가에겐 관대하고 누군가에겐 엄하다. 그 이유는 골리앗이 싸움의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무기도, 갑옷도 없이 철갑을 두른 거구와 싸우는 다윗에게 골리앗이 당연시하는 백병전[1]의 규칙은 아무래도 불공정하다. 다윗은 주저하지 않고 짱돌을 들었다. 결과는? 골리앗의 규칙을 깬 다윗의 승리였다. 골리앗은 자신과 싸우는 사람은 무조건 백병전으로 맞붙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상대방이 자신이 믿고 있는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다윗이 짱돌을 든 순간, 전투의 판세는 뒤바뀌었다. 세상에는 지킬 필요가 없는 규칙도 있다. 세상이 불공정한 것은 골리앗의 권위에 압도당한 우리가, 지킬 필요 없는 묵언의 규칙을 애써 지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정당하지 않은 규칙들은 너무나 많다. 정당하지 않은 규칙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일부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들은 부르카 착용 의무나 명예살인 등으로 고통받는다.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낮에 똑같이 일을 하시는데 아버지는 저녁 때 TV를 보시고 어머니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신다면, 저녁 밥상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소리 지를 이유는 충분하다. 위에서 하던 학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내가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똑같이 숙제를 안 해온 다른 학생들보다 나를 더 많이 때리는 선생님께 ‘왜 차별하시느냐’고 묻는 것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예의에는 어긋날지 몰라도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학교에서 8시간을 공부하고 방과 후에 학원에서 4시간을 더 공부했는데, 집에 돌아가기 전에 PC방을 들러 게임 조금 했다고 야단치는 부모님께 ‘게임 좀 하면 안 되느냐’고 묻는 것은 부모님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학생의 자세에는 어긋날지 몰라도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선생님께 이러서도 안 되고 경찰서를 찾아가면 더더욱 안 된다는 날라리들의 규칙을, 당한 사람이 지켜줄 이유는 없다. 우리는 약하지 않다. 골리앗이 ‘착한 행동’이라고 정한 규칙에 따라 살기 때문에 약해 보이는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골리앗보다 강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강함과 약함은 허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