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참 매력적인 매개다. 사람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남녀노소 모두 옷을 좋아한다. 나를, 나 자신을 표현하는데 옷만큼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건 별로 없다. 옷, 혹은 패션은 일상에서 누리는 소박한 예술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물가는 고공행진 중인데 이상하리만치 옷값만큼은 싸졌고, 실제로도 싸다. H&M, 포에버21, 자라에 들르면 밀라노의, 파리의, 뉴욕의 젊은이들이 입는 옷을 당장에 입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패션으로 개성 있게 표현하는 이 일상의 예술(?)을 구사하는 일이 아주 손쉬워졌다. 물론 패스트패션 덕분이다.
패스트패션의 이면[1]을 다룬 다큐멘터리라? 왠지 내가 누리는 이 달콤한 소비에 재를 뿌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하고, 아동노동 착취가 일어나고, 매캐한 화학염료로 대지를 손상시키고, 어마어마한 직물 쓰레기를 남겨 지구를 앓게 한다는, 뭐 그저 그런 얘기를.
맞다. 솔직히 패스트패션에 대한 다큐멘터리 <더 트루 코스트>는 가볍게 소비해 치우면 그만인 패스트패션 산업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당연히 사람들이 가볍게 즐길 만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천천히 화면 위로 흐르는 영상과 수치로 표현되는 사실적인 내레이션을 듣다 보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게 느껴진다. 올겨울 내가 사 입은 자라의 따뜻한 스웨터 하나에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다니, 놀랄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