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는 사료가 많지 않아 역사적인 진실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현재의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역사가 날조되는 경우가 꽤 많다. 특히 백제와 고구려, 가야 등 고대 국가들의 역사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뒤죽박죽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 우리의 고대사는 역사적 논란의 중심이 되어 왔다. ‘임나일본부설[1]’과 같은 일본 위주의 역사 왜곡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의 첫 번째 여왕 히미코가 신라 혹은 가야의 공주였다더라, 하는 자국 중심적 해석도 종종 눈에 띈다. 마치 일본의 역사 왜곡에 복수라도 하듯 우리의 역사가 더 우월하다는 태도다.
일본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백제를 두고서, 두 나라 간의 입장 차이는 여전하다. 삼국 중 백제는 일본과 유난히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심지어 2001년 아키히토 일본 천황은 “칸무 천황(781~806)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므로 한국과의 연을 느낀다”고 말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일본 천황이 백제의 후손일 수도 있다니! 그만큼 백제는 일본의 국가적 토대를 다져준 나라라는 것이 정설이다. 불교를 비롯해 글자, 학문, 기술 등을 전수해준 백제는 일본 최초의 불교문화인 아스카 문화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일본이 문명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백제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 중책을 수행했던 문화사절단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왕인(王仁) 박사다.
백제는 일본에 무령왕 때 한학과 유학 등을 전했고, 무왕 때 천문·역법·지리 등을 전했으며, 성왕 때 최초로 불교를 전했다고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기반을 백제가 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