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매우 시급한 문제이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대기권의 오존층에 구멍이 난 사진은 우리를 오싹하게 한다. 한편, 일상 속에서 매우 느리지만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변화도 있다. 남성의 정자수가 현저히 줄고, 자웅동체의 기형적 하등생물이 발견되거나, 과거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제비와 같은 새를 볼 수 없게 된 것 등이다. 소위 ‘환경호르몬’이라고 일컫는 내분비교란물질의 영향으로 우리의 몸은 과거 조상들의 몸이 처했던 위기와는 전혀 다른 위기에 처했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동식물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도 자연의 생명력은 여전히 강해서 후손들이 태어나고, 숲은 푸르며, 제비는 없지만 참새와 까치의 울음소리는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을까? 대답은 물론 ‘아니오’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질문과 대답은 환경오염 문제가 인류사의 수면 위로 부각되면서 끊임없이 되풀이돼 왔다. 최초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대중에게 던지고 답을 찾고자 했던 책이 바로 《침묵의 봄》이다.
카슨이 살았던 20세기 초·중반의 미국은 2차 대전을 통해 명실상부한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으며, 소련과 냉전구도를 구축했고, 공황과 호황을 번갈아 겪으며 자본주의적 풍요를 구가했다. 미국인들은 점점 강하고 부유해졌으며 원하는 것은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에서는 무기가, 시장에서는 상품이, 시민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러한 바람을 이루어 주는 유효한 수단이 되었다. 광대한 영토를 가진 이 나라의 국민은 자연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자연이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게 굴면 적절한 방법을 동원해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여기에 동원되는 수단은 주로 기업으로 대변되는 시장과 이들에 우호적인 정부가 공급하곤 했다. 무엇보다 전쟁을 통해 발전한 화학 분야의 산업이 전쟁이 끝나자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결국 잠재적 무기를 위해 개발되었던 기술은 인간을 귀찮게 하는 각종 해충을 제거해주는 일용품으로 탈바꿈해 소비되기 시작했다. 매일 새로운 화학약품이 소비자들을 현혹하며 제초제, 고엽제, 화학비료, 살충제, 살균제, 식물호르몬 등의 이름으로 팔려나갔고 정부와 기업, 과학자가 이러한 흐름을 주도해나갔다. 해충을 구제하길 원하는 농부, 벌레를 싫어하는 주부, 정원을 말끔하게 가꾸고 싶어 하는 시민 등 미국 전역의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살충제나 제초제를 사들였다. 정부는 정부대로 인간에게 도전하는 각종 해충들을 제압하기 위해 세금으로 DDT 같은 살충제를 사들여 대대적으로 살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