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 예산에 ‘주민숙원사업비’라는 게 있다. 마을 길 조성·농로 개설·하천 정비 요구 등 지역 민원을 들어주는 데 사용하라고 배정한 금액이다. 그런데 지금 이 사업, 세금이 새는 구멍이나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주민숙원사업을 담당하는 부서가 다르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무원 서너 명이 1년에 300개에 달하는 주민숙원사업을 검증하는 상황. 당연히 사업이 허술하게 관리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절차가 허술하다 보니, 주민숙원사업은 정말로 주민들의 숙원을 해결하는 데 쓰이지 못하고 엉뚱한 이들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변질되기 쉽다. 2016년 청도군에서는 공무원들이 주민숙원사업비를 타내 부동산 투기를 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에 가담한 공무원 네 명은 청도군 범곡리의 한 야산 토지를 매입한 뒤, 농산물 수송도로가 필요하다며 지역 주민 행세를 해 야산에 도로를 내달라는 주민숙원사업을 신청했다. 해당 야산에는 농지가 없었기에 얼토당토않은 민원이었지만, 주민숙원사업의 검증 과정이 워낙 부실해 이들의 요청대로 도로가 들어섰다. 위와 같은 주민숙원사업 부정 이용 정황은 한두 건이 아니다. 지방 의원이 본인과 친인척 소유 토지 주변에 1억 원이 넘는 규모의 주민숙원사업을 벌인 일, 마을 유지를 위해 진입도로를 만들어준 사건 등 감사원에 이미 적발된 사례가 많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2014년~2020년 7년 동안 시행된 주민숙원사업의 예산 총액은 6조 5000억 원. 대략 매년 1조 원 이상 꼬박꼬박 집행돼왔다.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낭비되고 있는 예산,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진짜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듣고, 거기에 예산을 효과적으로 배정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할까?
1989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시 시민의 생활 환경은 몹시 낙후되어 있었다. 시민의 3분의 1이 도시 외곽의 빈민촌에 거주했으며 상하수도, 공중보건시설, 학교 등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돈이 필요했지만, 시 예산은 대부분 이미 어디에 쓰일지 결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