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룡(1604~1661)은 복건성 천주(泉州)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무역에 종사하는 집안의 어른들을 따라 동남아시아 각지를 떠돌며 성장하였다. 마카오에 머물던 시절 정지룡은 포르투갈 상인과 접촉이 많았고, 그들이 아시아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되었다. 당시 정지룡은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이 서양 상인들이 필요로 하는 비단이나 도자기 같은 물건을 공급해 줄 사람을 찾아서 연결만 해줘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
정지룡은 포르투갈 상인들과 가깝게 지냈고, 이들을 통해 서양의 언어와 문화도 배웠으며, 이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스스로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기도 했다. 때문에 포르투갈 상인들은 종종 정지룡을 니콜라스 개스퍼드(Nicholas Gaspard)라는 세례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 후에도 정지룡은 여러 차례 서양 상인들과 함께 일을 했다. 스페인 상인들과 함께 필리핀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네덜란드인을 상대하기 위해 대만에 머물기도 했다. 큐슈의 히라도에서 이단[1]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정지룡은 포르투갈 상인들의 거래를 중재하던 참이었다.
이단은 정지룡을 자신의 근거지로 비밀스럽게 초대해 교분을 쌓기 시작했으며, 중요한 사업이 있을 때마다 정지룡을 불러 큰일을 맡기곤 했다. 1622년 네덜란드인들이 대만과 중국 대륙 사이에 있는 팽호열도를 무단 점거하고 중국에 통상을 요구하자 명나라 조정은 이 서양 상인들과의 협상을 위해 이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단은 정지룡을 불러 명나라 조정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사이의 협상에서 통역을 맡겼다.
정지룡은 이단과 함께 일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명의 태감 위충현[2]이었다. 태감이란 궁중 환관의 대표로,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자리다. 당시 태감 위충현은 황제를 등에 업고 조정의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위충현은 중국 동남 해안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기 시작한 서양 상인들, 그리고 조정의 통제를 벗어나 세력을 키우던 상인(해적)집단과 관련된 문제를 직접 챙기고 있었다. 정지룡은 위충현이 이단을 만날 때마다 해적 조직을 해산하고 조정에 귀의하면 엄청난 부와 권력을 주겠다고 권유하는 것을 인상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위충현 역시 이단이 아들처럼 아끼는 이 젊은이의, 기회를 노리는 늑대와도 같은 불안한 눈빛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